현지 사람들에겐 일상적인 음식이지만, 타지 사람들에겐 생소한 음식을 소개한다.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의 고향인 강원도 양양의 겨울철 별미, 섭국과 도치알탕이다.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 이번에는 청와대 재직 시절 식탁에 올렸던 음식 중 하나인 ‘섭국’과 ‘도치알탕’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 두 음식은 제 고향인 강원도 양양의 대표 먹거리입니다. 제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들이지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이 두 가지를 꼽을 정도로 애정이 깊습니다. 요즘도 종종 과거 어머니가 끓여 주신 섭국의 달큰한 국물을 쭉 들이켜고는 겨울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놀러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서울 상암동과 방이동 두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식당 ‘수산항’은 이 두 음식을 내는 해산물 요리 전문점입니다. 강원도 양양에 수산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항구가 바로 수산항입니다. 두 식당의 사장님도 이곳 수산항 출신입니다. 강원도 양양의 수산항 인근에는 섭국과 도치알탕을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은데, 서울에선 재료를 조달하기 힘든 탓에 이 음식을 내는 식당이 드문 것이 현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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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섭국은 땀이 날 정도로 매콤한 맛이 특징인데 수산항의 섭국은 그보다는 덜 매운 편입니다. 나름대로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셈이죠. 주택가 골목 사이에 있는 식당인데도 점심 무렵이면 섭국 한 그릇 먹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사실 양양 현지에서도 집집마다 섭국을 끓이는 레시피는 조금씩 다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인 물에 섭의 살을 발라 다져서 넣고, 여기에 밀가루 반죽을 턱턱 떼어 넣어 수제비처럼 만들어 주셨습니다. 수산항의 섭국은 ‘살짝 익힌 섭의 살을 발라내 숭숭 썰어 넣은 것이 전부’라고 할 만큼 기교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였던 이곳 사장이 어깨너머로 어머니의 손맛을 재현한 것이지요. 그래서 더 집밥 같은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요. 시원한 국물은 해장하기에 제격이지만, 도리어 술 생각이 나게 만든다는 것이 이 음식의 이중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겨울에 맛보아야 할 동해안의 별미들
메인 메뉴 없이도 술을 술술 부른다는 수산항의 밑반찬도 일품입니다. 섭국 한 그릇을 시켜도 총 여섯 가지의 반찬이 따라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가자미식해와 꽃게장, 대구아가미깍두기는 다른 식당에서는 맛보기 힘든, 딱 동해안 스타일이죠. 깍두기 반찬에 명태 아가미를 넣은 것은 봤어도 대구아가미깍두기는 처음 본다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요즘은 동해안에서 명태가 안 잡히다 보니 명태 대신 대구를 넣는 게 대세입니다. 이 원고를 쓰는 순간에도 입에 침이 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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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점 서울 마포구 성암로15길 8 TEL 02-372-3300
방이점 서울 송파구 오금로11길 30-7 TEL 02-413-7777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다 우연히 멧돼지 발골 장면을 보고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웨스턴 조선 호텔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거친 뒤 7년간 청와대 서양 요리 담당 조리장을 지냈다. 깐깐한 VIP의 입맛을 맞춰낸 ‘절대 미각’으로 레스토랑을 엄선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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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여성동아 진행 정희순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최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