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재벌그룹의 사내 유보금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일부 사회단체와 정치인들은 기업이 투자에 나서는 대신 과도한 현금을 내부에 축적함으로써 국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낸다. 이 같은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종단적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자들은 컴퓨스타트 등 글로벌 기업 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9298개 기업의 재무 데이터를 수집했다. 종속변수인 기업 성과는 기업의 장부가치 대비 실제 시장가치의 비율로 측정했다.
연구 결과 기업의 현금 보유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기업이 직면한 환경적 요인과 기업 요인에 따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기업이 속한 산업의 경쟁 강도, 연구개발 집중도, 그리고 성장률이 높은 경우 기업의 현금 보유는 기업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금은 경쟁자의 신규 시장 진입, 가격 인하, 생산능력 확대 등의 공격적 행보를 견딜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또한 기술 변화가 빠르고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현금은 다양한 전략적 대안을 확보할 수 있는 여유 자원을 제공했다.
강신형 KAIST 경영공학 박사 davidkang@kaist.business.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