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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恨 많은 역사… 희생된 넋 위로하고 싶어”

입력 | 2016-10-01 03:00:00

◇초혼/고은 지음/304쪽·1만3000원·창비




고은 시인은 자신의 시가 최근 아제르바이잔어로 번역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내 시가 한국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수원=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직도 노래할 것을/노래하지 않았다/이것을 두고/저것을 노래하였다/저것을 두고/이것을 노래하였다.’(‘2016년 이른 봄’)

 시인의 시력(詩歷)이 58년째다. 그럼에도 아직도 노래할 것을 노래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30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자택에서 만난 고은 시인(83)은 “시를 쓸 때는 늘 처음 마음이다. 막 시인이 됐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쓰고 지우고/쓰고 지웁니다/지워버린 시가 시입니다/그런가요? 가버린 시가 시인가요? 아직 오지 않은 시가 시인가요?’(‘두레 주막에서’) 등에서 보듯 오랫동안 시를 써왔음에도 시인은 지금도 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신작 ‘초혼’은 역사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지는 시집이다. ‘나는 8·15였다/나는 6·25였다/나는 4·19 가야산중이었다 … 나는 무엇이었다 무엇이었다/무엇이 아니었다//이제 나는 도로 0이다’(‘자화상에 대하여’)에서 시적 화자 ‘나’는 ‘역사’로 바꿔도 될 법하다. 그만큼 고은 시인이 살아온 세월은 그 자체로 극적인 한국 현대사다. 특히 제2부에 실린 원고지 130장 분량의 장시 ‘초혼’에는 현대사에 대한 시인의 의식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초혼’에서 시인은 ‘상고시대 백제 망령 고구려 망령’부터 시작해 제주 4·3사건, 6·25전쟁, 노근리 양민학살, 5·18민주화운동, 세월호까지 참사의 현장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들을 불러내면서 원혼을 달랜다. 고은 시인은 “우리 역사가 피를 많이 흘린 역사가 아닌가. 죽어간 사람들이 못 살았던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라면서 “가버린 넋을 불러서 원한을 삭여주고 애도의 제단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에 ‘초혼’을 썼다”고 밝혔다.

 ‘이제 막 시단에 오른 청년’의 때를 돌아보는 시도 눈에 띈다. ‘시 옆에서’에는 1958년 조지훈에 의해 ‘현대시’ 창간호에 신인작품으로 실린 뒤 그해 ‘현대문학’ 11월호에 3회 추천을 단회 추천으로 ‘때려잡고 나온’ 시인의 사연이 담겼다. 미당 서정주가 “세 번 추천까지도 필요 없겠다”며 청년 시인 고은의 등단을 완료시킨 뒤, 당시 ‘현대문학’ 조연현 주간은 편집 후기에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그만큼 선배 시인들의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것.

 그는 올해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고은 시인은 “상 얘기는 하지 말자”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는 ‘국민 시인’ ‘민족 시인’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이제는 그 경계 안에 있고 싶지 않다”면서 “넓은 지평선의 공간을 감당해야 하지 않는가. 시는 한민족 안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를 문자로 한정지어 생각하는데 실은 시란 우주를 아우르는 것”이라면서 “우주의 율동 한 가닥이 내게도 닿아서 내 세포가 시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시인은 ‘심청’을 주인공으로 삼은 서사시를 쓰고 있다면서 “내년쯤에는 출간될 것”이라며 왕성한 창작열을 내비쳤다.

수원=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