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데버러 스미스’ 지망 번역가와 성석제 작가 번역수업 현장
소설가 성석제 씨(왼쪽에서 네 번째)와 번역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영미권 독자는 한 문장의 단어가 14개를 넘기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긴 문장은 끊어서 번역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성 씨는 “해당 언어 위주로 번역해야 한다. 원문을 고집하면 이도 저도 아닌 외계어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강 씨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을 한 데에는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데버러 스미스 씨의 번역도 한몫했다. 스미스 씨처럼 한국어를 배운 원어민 번역가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번역아카데미는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7개 언어권별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날 수강생들은 단어의 의미부터, 문맥은 물론이고 소설의 배경인 1960, 70년대 주택가와 다방, 기차역 구조까지 파고들었다. “주선의 아버지가 ‘우리 주선이 많이 사랑해주고’라고 말하는 대목은 영어로 그대로 옮기면 동성애 분위기가 난다”는 질문도 나왔다. 성 씨가 답했다. “한국의 어떤 아버지도, 설사 자신이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그런 부탁은 안 하죠. ‘잘 돌봐 달라’는 의미를 문어체적으로 쓴 거예요.”
수강생들은 “‘노가리꾼, 똥방위 말년’…. 또 ‘똘똘이 목욕시켜준 지 얼마나 됐냐’는 어떻고요”라며 흘러간 은어의 말맛을 살리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문화, 관습 완벽히 이해해야
“한국의 시장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5일장은 아세요? 닷새에 한 번 열리는 시장이에요. 가축시장은 5일장에서 열리고요. 상설시장은 계속 영업하는 시장이죠. 일반명사예요.”(성 씨)
동네 어른이 주선에게 “김 사장 아들 아니냐”고 묻자 이 씨인 주선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에서도 수강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씨를 김 씨라고 하고, 당사자도 부인하지 않는 게 의아하다는 것. 성 씨는 감탄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흔한 게 ‘김 사장’이에요. 사람들은 실은 서로에 대해 정확히 몰라요. 주선도 굳이 이 씨라고 말하지 않죠. 피상적으로 알고 지내는 모습을 묘사한 장치인데 예리하게 집어내네요!”
영국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를 통해 자연스레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팀 홈 씨(32)는 “재미있을 것 같아 번역에 도전했다”며 “그림책을 번역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인인 캐리 미들디치 씨(27·여)는 “김중혁 작가의 ‘미스터 모노레일’은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재미있는 작품이라 꼭 번역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