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리움미술관에 소장된 서화첩 ‘만고기관’에 실린 소무간양(蘇武看羊·소무가 양을 보다). 양기성(梁箕星)이 그린 작품이다. 삼성리움미술관 제공
소무는 허허벌판에서 죽지 않고 19년을 버텼다. 목이 마르면 눈을 쪼개 먹고, 배가 고프면 가죽옷을 씹거나 풀뿌리를 씹으면서 혹한을 견뎌냈다. 19년 후 한나라 무제의 아들 소제(昭帝)가 황제로 즉위했고 그는 흉노와 화친을 맺었다. 소제는 사신을 보내 소무를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흉노의 왕은 소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한나라의 사신이 대응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우리 황제께서 상림원(황제의 동산)에서 사냥을 하시다가 활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기러기 발목에 비단 헝겊이 감겨 있었지요. 그 비단에는 ‘소무가 대택(大澤·큰 연못) 근처에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소무가 아직 살아 있는 것 아닙니까?”
광고 로드중
소무는 그 세월을 시베리아에서 어떻게 견뎠을까. 사신으로 왔다가 억류돼 벌판에 버려졌으니 억울하고 애통해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중국의 시문집으로 진(秦)·한(漢) 이후 제(齊)·양(梁)대의 대표적인 시문을 모아 엮은 책 ‘문선(文選)’에는 소무의 시가 실려 있다.
“머리를 올리고 부부 인연 맺은 뒤로 둘 사이에 은애를 의심하지 않았노라(結髮爲夫妻 恩愛兩不疑).”
은애란 고마워 베풀고 사랑함이다. 부절을 붙들고 벗 이름을 돌려보내는 소무의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한나라의 사신으로 그 자리를 버텼다. 그 손의 깃발은 그 마음의 상징이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그의 단편소설에서 제시한 답은 ‘사랑’이었다. 그것도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버텨낼 수 있는 굳센 마음의 비결은 간결하고 맹목적인 믿음과 헌신이다. 세상살이 온갖 처세의 방법과 구구한 전략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얼굴색이 먹빛이 되고 몸이 다 야위어져서 나타난 소무를 기억하노라면 “완악한 사람의 마음은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람은 꿋꿋해진다”고 했다.
광고 로드중
고연희 서울대 연구교수 lotus126@daum.net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