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정의 은인’ 쿠리하라 고이치로 씨가 지난 22일 미사리경정장에서 한-일 경정의 현주소와 과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경정의 수준은 일본의 60% 정도 된다”며 “한국경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정장이 더 건설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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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정의 은인’ 쿠리하라 고이치로를 만나다
현역 선수시절 통산상금만 110억원
일본경정 30년간 평정한 초특급 스타
사비로 보트 사서 한국선수들 지도
“나를 보는 제자들 눈 보면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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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정의 은인’ 쿠리하라 고이치로(67·일본)는 자신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12회 쿠리하라배 특별경주’ 시상식에서 선수들에게 ‘이미지 트레이닝’의 중요성과 선수의 자세를 강조했다.
쿠리하라가 미사리 경정장을 찾은 지난 22일. 가을은 붉은 빛을 품고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미사리 경정장도 파란 하늘을 이고 물가엔 수줍은 듯 불그레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는 이날 하루 종일 경정장 본관 2층 외부인사 관람석인 ‘경정마루’에서 뚫어지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밤색 양복에 자그마한 키, 약간 그을린 얼굴에선 과거 일본경정의 최고스타(그는 1969년부터 1999년까지 30년간 일본 경정 초특급 선수로 활약했다. 현역시절 통산상금만 110억원을 벌었다)보다는 푸근한 이웃집 촌로의 향취가 풍겼다.
최근 힘겹게 암과 싸우고 있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내 이름을 딴 대회를 보니 기쁘다. 제자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힘이 솟는다”며 껄껄 웃었다. 그리곤 한국경정 초창기 한국에 온 경위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2001년 어느 날 일본신문에서 한국경정이 생긴다는 기사를 봤다. 그래서 얼른 주일한국대사관에 ‘내가 한국경정선수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편지를 썼는데 그게 인연이 돼 한국에 왔다. 막상 한국에 와보니 보트도 모터도 없었다. 그래서 사비를 털어 일본서 모터 10기와 보트 7척을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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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경정은 그에게 빚이 많다. 2001년 8월 경정훈련원의 교관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3기 후보생까지 직접 지도했다. 경주 운영부터 심판, 경주장비, 판정, 시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자문을 받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한국경정의 안착에 큰 공헌을 한 후 2004년 일본으로 돌아가 부인과 함께 현재 임대업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쿠리하라와 한국경정 선수들의 깊은 ‘사제의 정’은 잘 알려진 일. 매년 쿠리하라배가 열리는 10월이면 한국에 온 스승을 만나기 위해 한국의 그의 제자들이 모두 모인다. 또 쿠리하라도 한국선수나 경정직원들의 경조사가 있으면 주저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어떤 제자가 가장 인상에 남는가’라고 묻자 “나는 자식이 없다. 내 제자들이 모두 내 자식이다. 자식이 더 낫고 말고가 어디 있는가”라는 ‘부모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2013년 쿠리하라배에서 2착 한 뒤 한참동안 펑펑 울었던 김종민(1기) 선수가 기억난다고 했다. 김종민은 그랑프리, 대상경주 등 굵직한 대회에선 모두 우승을 해봤지만 유일하게 스승의 이름을 딴 쿠리하라배에선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는 김종민을 근성이 뛰어난 ‘악바리’로 기억했다.
쿠리하라가 본 한국경정과 일본경정의 수준 차이는 어떨까. “현재 한국경정의 수준은 일본경정의 60% 정도쯤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곧 한국선수들이 일본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일본엔 24개의 경정장에서 숙박까지 하며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데 한국엔 그런 시설이 없다. 연습량 차이다. 인프라만 개선되면 금방 일본선수들을 따라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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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가 본 한국경정의 과제는 무엇일까. 그는 “글쎄, 한국에도 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경정장 1개만 더 생겼으면 좋겠다. 소음문제로 벽에 부딪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안타깝다. 경정을 레저의 시각으로 접근해야지 도박의 눈으로 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보트에 오르고 싶지 않을까. “2004년 일본으로 돌아간 뒤 한번도 보트에 오르지 않았다. 가끔씩 배에 오르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체력도, 기회도 쉽지 않다. 그러나 꿈에선 보트를 몰아본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의 대답에서 그가 뼛속까지 경정인임이 느껴졌다.
하남 l 연제호 기자 so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