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국제부장
도쿄 신주쿠 한국문화원 방화 소식(지난달 25일)을 전해 들었을 때는 더했다. 일본의 혐한(嫌韓) 감정이 극단적 테러로까지 번지는 것은 아닌지 깜짝 놀랐다가 일단 큰 피해가 없으니 최대한 차분하게 전달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동아일보와 아산정책연구원 공동 여론조사 결과(2일자 보도)를 보고 ‘우리 국민이 역시 현명하고 훌륭하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다. 대다수 국민(66.6%)이 일본의 잇따른 역사 도발과 과거사 부정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한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70.1%)는 의견도 반대 의견의 3배가 넘었다. 정상회담 지지 의견은 한일관계가 지금보다 덜 나쁘던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많아졌다.
아베 정부의 후안무치와 몰상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로선 미국이 일본을 나무라며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을 요구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미국은 말로는 반성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본을 중국 견제의 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 편을 들고 있다. 모든 국가가 국가 전략과 이익 앞에 냉혹한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첫 단추를 끼웠으면 좋겠다.
우선 아사히신문사와 인터뷰부터 했으면 한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부의 역사 왜곡 노선에 맞서 균형 있고 양심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언론이다. 일전에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일본의 침략사에 대한 반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이례적으로 아사히신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국제적으로 큰 공감을 얻으며 일본에 대한 비난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인 시절 혹은 취임 직후 아사히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이런 관례를 박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취임 3년이 지났는데도 인터뷰 요청에 묵묵부답인 것은 문제가 있다.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관계자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에 계속 청을 넣고 있지만 아직 답이 없다”고 전했다.
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