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사회부장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타는 비행기여서 전세기에는 해당 항공사의 회장이나 고위 임원이 반드시 동승했다. 2004년 대한항공이 전세기로 채택됐던 순방 때였다. 동승한 대한항공의 고위 임원이 비행기 안을 한 바퀴 돌면서 탑승객들에게 애로사항은 없는지 살폈다. 한 기자가 기내식을 먹는데 백김치가 나온 것을 거론하면서 이 고위 임원에게 “빨간 김치 좀 달라”고 요청했다. 그 기자의 용감한 건의에 침묵하고 있던 모두가 오랜만에 빨간 김치 좀 먹어보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 고위 임원은 “빨간 김치를 내놓으면 비행기의 내벽에 냄새 입자가 배게 된다. 다음에 이 비행기를 외국인들도 타게 될 텐데 혐오감을 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곤 승무원들에게 “다음 식사 때 백김치를 더 갖다 드리라”고 지시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의아했다. 이미 당시만 해도 에어프랑스 등 외국 국적 항공사들도 한국 노선에선 매운 냄새가 진동하는 컵라면과 김치를 내놓았고, 오히려 한국인들보다는 외국인 탑승객들이 호기심으로 너도나도 컵라면과 김치를 달라고 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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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 치고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오늘 검찰에 불려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된다. 아마도 조 전 부사장은 서울서부지검 8층의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7년 전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씨가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던 곳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도 이 조사실을 거쳐 간 유력 인사들이다.
공교롭게도 2007년 신 씨를 조사했던 검사는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1과장으로 서울서부지검에 파견 나왔던 문무일 서울서부지검장이다.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 내에서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안이라는 점에서 조 전 부사장을 가볍게 처벌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 여론은 대한항공 측의 조직적 은폐는 물론이고 국토교통부와 항공사의 유착관계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검찰 수사가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적폐를 도려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온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