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정치권에는 지금 ‘국정원 개혁’ ‘서해 북방한계선(NLL) 공방’이 한창이다. 안보사안이므로 중요한 주제다. 문제는 논쟁의 진짜 목표가 안보 강화가 아닌 ‘상대방 깎아내리기’ 혹은 ‘이념적으로 고립시키기’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국민에게 실익이 없는 공방(攻防)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현장을 들여다보자. 기자는 최근 경제인들을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지 이미 오래라며 이구동성으로 민생을 걱정했다.
“복지 재원 마련한다고 국세청이 중소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너무 뜯어간다.”(중소기업 사장)
“실물 경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하반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대기업 임원)
“2008년 금융위기 악몽이 자꾸 떠오른다.”(외국계 펀드매니저)
최근 언론에 등장하는 각종 통계치도 현장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장률은 사상 처음으로 8분기 연속 0%대이고 지난 5년간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상승률도 계속 줄고 있다(기획재정부). 한국 경제를 지탱해 왔던 수출도 엔저(円低) 현상으로 비상이 걸렸다. 가계 부채는 1000조 원에 육박하는 데다 일하는 사람 중 자영업자 비중(4월 기준)은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일각에선 ‘경제가 괜찮다’는 착시 현상이 있는 건 왜일까.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사업부서가 전체 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스마트폰 붐’이 꺼질 경우 앞날을 알 수 없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 급락은 스마트폰 포화에 따른 판매실적 우려에 ‘혁신 부족’이 겹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자에게 “스마트폰 진화는 이제 거의 끝나간다. 중국이 우리 기술에 근접한 제품을 대당 200달러에 내놓고 있다. 중국은 이미 삼성 LG 턱밑까지 추격했다”고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어수선한데 요즘 총리가 안 보인다. 대통령은 외교하느라 바쁘고 경제팀은 갈팡질팡하는데 총리는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국제관계와 남북관계가 나라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국에선 대통령이 외교안보에 집중하는 게 타당한 일이다. 내정은 총리가 주도적으로 챙기는 게 맞다. 경제장관 회의도 주재하고 민생 현장도 살피고 미디어와도 자주 접촉해서 국민과 더 소통해야 한다. 대통령 눈치만 보는 총리가 아닌, ‘민생의 그늘’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총리를 보고 싶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