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대간서 퐁뒤하이킹 즐기고, 말타고 빙하호반 어슬렁
캐나다로키는 19세기 개척기의 카우보이 문화가 아직도 살아 숨쉬는 ‘와일드 웨스트’의 산악관광지다. 호수 건너편에 레이크루이스 스키장의 눈을 배경으로 샤토레이크루이스 호반호텔이 보인다. 밴프(캐나다 앨버타 주)=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레이크루이스 부근의 도로가에서 먹이를 찾던 두 살짜리 그리즐리 베어.
로키의 숲은 침엽수림이다. 그래서 계절에 따른 색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그 숲 빛깔이 연하다. 산등성 숲가의 초원이 연록의 새 잎으로 채색된 덕분일 게다. 캐스케이드 산 아래 전망대로 오르는 산길엔 들꽃이 한창이었다. 그 숲에서 수직높이 510m의 전망대까지는 가파른 산길이 3.7km나 이어진다. 이날 나는 조엘 헤이건 씨(식물학자)가 안내하는 ‘퐁뒤 하이킹(Fondue Hiking)’에 유럽인 7명과 함께 참가했다. 헤이건 씨는 산을 오르는 두 시간 내내 그 해박한 지식으로 로키 산맥의 식물과 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퐁뒤 하이킹’의 가이드로 나선 식물학자 조엘 헤이건 씨가 캐스케이드 전망대에서 초콜릿 퐁뒤를 장만 중이다.
레이크루이스도로 돌아온 오후. 나는 수면의 얼음이 반쯤 녹은 레이크루이스 호반을 말 잔등에 올라 둘러보았다. 해발 1750m의 이 호수는 로키의 빙하가 녹아 내려 형성된 빙하호인데 폭은 500m지만 길이는 2km나 된다. 말은 나를 태우고 천천히 그 호반의 숲길을 걸어 샤토레이크루이스 호텔 정반대편의 호수 끝에 데려다주었다. 거기서 바라본 호수 풍광은 새로웠다. 멀리로 레이크루이스 스키장의 하얀 슬로프가 보였고 그걸 배경으로 샤토레이크루이스 호텔이 호반에 자리잡은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곳은 마을에서 4km 거리의 레이크루이스 철도역. 캐나다 철도역 중 가장 높은 곳인데 1910년에 문을 열었지만 여객열차가 서지 않은 지는 벌써 수십 년째. 트랜스캐나다 대륙횡단도로가 개통된 후 여객 수요가 사라진 탓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을 찾는 이는 많다. 나처럼 100년 전 통나무로 지은 이 역사의 맞이방(대합실)에서 한가로이 저녁식사를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전체가 레스토랑으로 개조됐다. 방 한편에는 철도 운행 당시 사용하던 기계가 원래 모습 그대로 제자리에 있다.
레이크루이스에서 숙소는 샤토레이크루이스 호텔 입구의 디어로지(Deer Lodge). 역시 기차역만큼이나 오랜 역사의 목조 저택이다. 다음 날 햇빛 화창한 봄날, 이 호텔 정원에선 결혼식이 열렸다. 하객이 30여 명뿐인 조촐한 웨딩에서 하얀 드레스 차림의 신부는 로키의 봄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캐나다로키에서 만난 봄의 정경 중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건 캘거리 다운타운에 있는 프린스 아일랜드 파크의 한가로운 봄날 오후다. 이곳은 보 강의 지류를 끌어들여 조성한 수변공간의 작은 섬. 짧은 다리 건너는 빌딩이 밀집한 다운타운이다. 섬은 온통 나무와 잔디의 신록에 뒤덮여 커다란 정원처럼 보였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이 찬란한 봄을 즐기려는 시민과 직장인으로 북적였다. 잔디밭에선 대학생의 연극 연습이 한창이었고 그 옆에선 요가 수업도 펼쳐졌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는 아이와 더불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고 한가로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보였다. 직장인들은 강변의 길을 따라 조깅을 하느라 길게 줄을 이었다.
▼ 밴프의 핫스프링스 호텔서 먼로가 오랫동안 머문 까닭은 ▼
캐나다로키 관광의 중심타운 밴프의 중심가 밴프애버뉴의 봄날 표정. 뒤로 밴프의 랜드마크인 런들 마운틴이 보인다.
밴프는 캐나다로키의 심장부. 로키의 빙하수로 이뤄진 보(Bow) 강이 관통하는 드넓은 계곡의 초원이다. 이곳 원주민은 1만1000년 전부터 살아온 스토니 부족. 그런 밴프에 유럽인이 들이닥친 건 1700년대 초반인데 애초엔 원주민과 모피교역을 하던 작은 타운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온천 발견과 4년 후 캐나다 퍼시픽 철도(CPR·밴쿠버∼몬트리올) 개통을 계기로 환골탈태를 거듭한다. 로키의 산악과 빙하, 호수는 물론이고 온천욕과 스키까지 즐기는 세계적인 산악관광지로 변모했다.
그런 밴프의 상전벽해 급 변화 중에 꼭 기억할 게 있다. 설퍼 마운틴 부근에 자리 잡은 밴프 핫스프링스 호텔이다. 호텔은 이달 1일 개업 125주년을 맞았는데 주인은 다름 아닌 철도회사 CPR. CPR는 샤토레이크루이스(밴프국립공원 내 레이크루이스 소재) 샤토프롱트나크(퀘벡 주 퀘벡시티 소재) 등 세계 최고급 반열의 샤토(작은 성) 스타일 호텔 여럿을 소유하고 있다. 모두 개통 당시부터 철도를 관광과 연계시킨 선진적인 전략의 산물이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당시 철도건설의 지휘탑이던 CPR의 윌리엄 코르넬리우스 반 혼 사장. 그의 경영전략은 이 말로 요약된다. ‘이 멋진 경관을 내다 팔 수 없다면 관광객을 이리로 데려올 수밖에.’ 호텔은 철도 개통 이듬해(1888년) 250개의 객실로 개관했다. 현재는 개·보수를 통해 850개로 늘었는데 그래도 외관은 변함이 없다. 호텔은 보 강변에 있고 거기엔 골프코스도 있다. 호텔박물관엔 ‘섹시 심벌’ 메릴린 먼로가 거기서 어드레스 자세로 촬영(1954년)한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설퍼 마운틴 부근엔 온천이 여럿 있다. 그중 어퍼 핫 스프링스(Upper Hot Springs)에서의 온천욕은 캐나다로키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어트랙션이다. 이곳 야외 온천풀의 주변은 온통 로키 산악이다. 한겨울엔 그게 설경으로 바뀌는데 스키를 마친 후 여기서 즐기는 애프터스키 온천욕은 그래서 더더욱 인상적이다. 요즘 같은 봄날엔 그 우람한 바위 봉과 산기슭의 잔설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봄기운에 로키의 색다른 모습을 온천욕 중에 본다.
온천욕을 마친 관광객의 일상사는 밴프애버뉴(타운중심가)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밴프는 캐나다로키의 국립공원 4개(모두 세계자연유산 등재) 중 최초의 타운. 그 면적(3.93km²)은 절대로 늘릴 수 없다고 규정한 연방법으로 고정됐다. 그래서 등록주민도 7400여 명에서 더 늘지 않는다. 건물도 모두 2층 높이로 제한됐다. 그래서 이곳은 언제 찾아도 그 모습 그대로다. 건조한 로키 산악에선 맥주가 더더욱 당긴다. 그런 갈증 해소엔 ‘밴프애버뉴 브루어리 컴퍼니’(2층)가 좋다. 영국산 발아보리로 직접 양조한 싱싱한 생맥주가 다양하다. 저녁 식사로는 ‘더 케그(The Keg)’ 같은 캐나다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맛나기로 소문난 앨버타 산 쇠고기(비프스테이크)를 오커나건밸리(브리티시컬럼비아 주 호반)산 레드와인과 곁들여 먹는다. 이곳 서부의 카우보이 문화를 맛보고 싶다면 늦은 저녁에 ‘와일드 빌리(Wild Billy)’바가 제격이다. 마룻바닥 홀에서 라이브 밴드의 컨트리음악에 맞춰 한데 어울려 추는 라인댄스 체험은 두고두고 생각날 테니. 이때 복장까지 큰 버클 허리띠의 청바지, 흰 와이셔츠의 카우보이 차림이라면 금상첨화.
밴프(캐나다 앨버타 주)=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