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시인 유방선(柳方善)은 ‘술회(述懷)’라는 시에서 ‘나날이 사립문 닫아걸고, 한낮이 되어서야 아침잠 깨었더니, 아이놈이 새로 물을 길어다가, 돌솥에다 인삼과 복령을 달이네(日日掩柴荊 朝眠午始醒 山童新汲水 石鼎煮蔘(령,영))’라고 하였습니다. 가끔은 부지런함보다 이런 게으름이 더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의 게으름은 꾸짖을 일이겠지만 나이가 든 분의 게으름은 삶의 여유입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이식(李植)은 ‘아이놈 세수하라 깨워야 느지막이 일어나고, 손님 와서 바둑 두자 할 때 그제야 옷을 걸친다네. 인생이 이러해야 진정한 해탈이라 할지니, 하필 육신이 사라져야 근심이 사라지겠는가?(兒呼進관睡方晏 客來對局衣始(관,환) 人生此是眞解脫 何必無身乃無患)’라고 하였습니다. 출근 준비 서두르지 않고 느지막이 일어나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굳이 불편하게 옷을 갖추어 입지 않아도 되는 게으른 삶이야말로 늙음의 특권 아닐까요.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