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홍렬 씨-어린이재단, 남수단에 자전거 200대 선물
16일 남수단 보르초등학교 학생들과 이홍렬 씨(앞)가 새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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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스 마피올 군(14)은 열흘 전부터 반짝이는 새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닌다. 매일 4시간을 흙발로 걸어야 했던 왕복 8km의 비포장 등굣길을 동생을 태우고 씽씽 달려간다. 폭우가 내린 뒤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자전거를 선물한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을 매일 상상했다.
“우리 ‘딩카’족 어른들처럼 키가 아주 큰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키보다 마음이 훨씬 큰 분이었네요.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미스터 리’ 아저씨를 생각할 거예요.”
아프리카 남수단 종글레이 주 말렉초등학교 4학년인 마피올 군은 16일 키다리 아저씨와 처음 만났다. 부족 간 내전과 풍토병으로 부모를 잃은 지구 반대편 고아 소년에게 자전거를 선물한 주인공은 방송인 이홍렬 씨(58). 15년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씨는 올해 동아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공동 기획으로 제3세계 빈곤 아동에게 자전거를 선물하는 ‘두 바퀴의 드림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씨는 지난달 5일부터 한 달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총 610km를 걸으며 기금을 모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후원이 이어져 당초 목표였던 1억 원을 훌쩍 넘긴 3억1148만 원(자전거 2595대분)을 모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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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재단은 15일 남수단 종글레이 주 보르초등학교에서 후원자들의 기금으로 마련한 자전거 200대를 인근 지역 4개 초등학교와 전쟁고아 임시 보호시설에 전달했다. 자전거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한결같은 기쁨이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 구하는 의사가 될래요”
마피올 군은 매일 오전 6시 차 한 잔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학교로 향한다. 말라리아와 황열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다. 흙 움막에서 생활하며 텃밭에서 수확한 땅콩 반 컵으로 하루를 때우는 형편에 빈속으로 햇볕 아래를 걷다 여러 번 쓰러졌지만 수업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 덕에 지난 학기 시험에서는 반 학생 48명 중 3등을 했다. 뾰족한 자갈과 물웅덩이로 뒤덮인 등굣길에는 이따금 딩카족과 사이가 나쁜 ‘물레’족 남성들이 나타나 아이들을 납치하기도 한다. 마피올 군은 “자전거 덕에 동생과 함께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숲에서 불쏘시개를 꺾어 학비를 대는 이모를 위해 집안일에도 나섰다. “염소에게 풀을 먹이고 땅콩 밭을 돌본 뒤에도 수업 내용을 복습할 시간이 남는다”며 활짝 웃는다.
○내전으로 인한 상처 여전
지난해 7월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은 오랜 내전의 상처와 빈곤으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39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25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500만 명이 피란길로 내몰렸다. 도로, 학교, 병원 등 사회기반 시설은 대부분 파괴됐다. 독립 1년을 맞았지만 석유 매장이 집중된 북쪽 국경에서는 수단과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가축을 먹일 목초지와 우물을 둘러싼 국내 부족 간 유혈충돌도 빈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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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재단은 현재 남수단 지역 개발 사업을 위해 후원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또 9월부터 남수단 아동과 후원자를 일대일로 잇는 결연 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이 씨는 “‘나를 절대 잊지 말아 달라’는 마피올 군의 당부에 가슴이 찡했다”며 “결연 사업이 시작되면 남수단 후원자 1호로 꼭 등록하겠다”고 말했다.
보르(남수단)=고현국 기자 m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