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대선 투표… 시민들 표정 “무바라크 독재 무너뜨리고 선거다운 선거까지…” 눈물
“파라오와 술탄, 제국주의와 왕정에 이어 군부의 억압통치에 신음해온 이집트 국민들이 드디어 그들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게 됐다”(알자지라 방송)
이집트 역사상 첫 민선 대통령 선거가 23일(한국 시간) 시작됐다. 지난해 2월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된 지 15개월 만이자 1952년 군 장교인 가말 압델 나세르가 비밀 군사조직 ‘자유 장교단’을 이끌고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60년 만이다.
수도 카이로 교외의 한 대학 건물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이날 투표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8시에 벌써 시민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 BBC방송 등이 전했다. 히잡을 쓴 여성들은 남성들과 따로 줄을 섰으며 모두 기대감에 들뜬 모습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시민들의 표정만큼이나 날씨도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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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야말로 무바라크 30년 독재를 끝내고 이집트 역사에서 첫 민간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행사다.”
카이로 시민 알리 씨(70)는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벅찬 감정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동안 치러진 선거는 군부에 의해 주도된 투표여서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3월 상하원 국회의원선거 때 평생 처음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히잡을 쓴 나흐마드 압델 하디 씨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집트에 오늘은 아름다운 날이다. 조국과 내가 오늘에서야 위엄을 갖게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외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새로 뽑힐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뚜렷하게 밝혔다. 노점상 아흐메드 무함마드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 대통령이 서민들이 제기한 문제와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며 “무바라크 대통령은 서민들의 이익에는 관심 없이 착취하기만 했다. 다시는 그런 비극을 겪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실업사태나 종교 갈등 등 당면한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주부 라시다 씨는 “이집트 상황은 모든 것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자식 셋이 모두 대학을 졸업했지만 극심한 실업사태로 취업을 못하고 있다. 새 대통령은 실업문제를 해결할 인물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취업에 성공했다는 무함마드 마그디 씨도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다는 아데 알푸다 씨는 “우리 사회에 있는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대통령이 뽑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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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식 기자 jy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