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총격사건 계기로 자성의 목소리
사실 민주정치란 말의 정치이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서 다른 힘을 동원하지 않고 오로지 말로써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대의 힘이나 경찰권 검찰권을 비롯한 권력을 동원하는 정치가 민주정치일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금력을 동원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일 뿐,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치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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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현행법상으로 보면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허위 과장 표현이나 흑색선전은 위법인 반면에 특정 사실을 지목하여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 독설은 명예훼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된다. 말의 정치인 민주주의에서 어느 정도까지 말이 허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법적으로 허용되는 정치 독설이 총기 난사의 원인이 되었다면 혹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치 독설을 자제하자는 미국의 논의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도를 넘어선다는 비난을 받는 정치 독설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총기 소유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을 물들이는 폭력사태의 이면에는 원색적인 막말 공방을 통해 격앙되었던 감정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정치 독설의 자제 필요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독설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국민의 의사를 결집하고, 정책대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과정이라고 볼 때, 독설을 통한 자극적 표현이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설이 빠진 말의 정치가 공허해지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정당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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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민주정치에 필요한 점은 독설적 표현으로 눈길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사안별로 정확한 이해와 적절한 대안, 그리고 합리적인 표현으로 정리해내는 것이다. 이미 정치 독설과 정치폭력에 식상한 국민은 내용이 부실한 독설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정책적 대안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정치문화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해보자. 과연 우리의 정치문화는 폭력을 유발하는 독설의 정치문화가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지…. 누가 더 먼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지를 국민이 지켜볼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