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교수가 아니다. 그러나 학생에게 열정을 심어주려고 노력은 한다. 최근 내가 맡은 지도학생 1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면담을 했다. 대학에 막 들어온 신입생도 있다. 얘기를 나누면서 학생들은 더는 내게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거짓말 학교’가 떠올랐다. 소설 속의 학교는 재능 있는 아이를 모아서 좀 더 창의적이고 위대한 거짓말을 하는 기술을 터득시켜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영재학교이다. 입시전쟁의 잔혹함, 그 속에서 서로 경계하고 질시하며 거짓말조차 방치해야 하는 학교 현장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대학입시 면접 때 반복해서 듣는 거짓말의 향연, 그것을 선생님이 가르치고 부모가 권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 대학교수는 무력감을 느낀다. 누가 더 감쪽같이 속이느냐가 점수에 1점이라도 보태진다면 잔혹한 전쟁터에서 누가 마다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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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AIST 생명과학과에서 졸업생이 단 1명도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올해 2월에 생명과학부를 졸업한 학생 64명 중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은 15명이었다. 낮은 대학원 진학률보다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사실은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 중 85%가 사실은 의학전문대학원 시험에 떨어진 패잔병이라는 점이다.
누군가가 이 나라 생명과학의 미래를 묻는다면 눈을 들어 이들을 보게 하라고 외쳐야 하는 이 현실이 무섭고 부끄럽지 아니한가. 2005년 의전원 제도를 도입할 당시 왜 선배 교수들이 쌍수를 들고 반대했는지 이제야 깨우치게 되는 내 어리석음을 어찌할까. 교육부 관료들에게 간청한다. 제발 2005년 이전으로 돌려놓아 달라고. 대학이 더는 거짓말의 경연장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현실을 직시하자. 의전원 제도는 잔혹한 입시전쟁의 과열을 완화할 목적으로 교육 선진국이라 할 미국의 제도를 본떠 2005년부터 시행한 제도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입시경쟁의 치열함은 완화되었는가. 고3 수험생의 수험생 기간만 4년 더 연장됐을 뿐이다. 학원시장은 노다지를 만났고 기초학문은 붕괴되고 있다. 의전원은 생물학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 기초과학 전공의 학생뿐만 아니라 약대 공대, 심지어 문과계열 학생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학생뿐이랴. 우리나라의 미래도 함께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