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학원의 물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지방에서 막 상경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강사였다. 학생 중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물리 점수도 가장 형편없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선생님은 나를 비롯한 서너 명의 학생을 모아 방과후수업을 해주었다.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던 달에는 선생님과 나, 이렇게 둘만 빈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했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다.
다행히 나는 그해 입시에 합격했다. 학교도 아닌 입시학원에서 만난 나에게 한 학기 가깝도록 방과후수업을 해주었던 김미숙 선생님을 찾아 봬야 한다는 생각을 한 차례 했을 뿐, 잊어버렸다. 2년 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을 때도 그 선생님 생각을 잠깐 하고 말았을 뿐이다. 그러다 연락처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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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특별한 선생님을 만났던 때.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해준 국어선생님도 있었고 아플 땐 음식을 만들어다주셨던 선생님도, 등록금을 보태주신 선생님도, 학습지를 사다주신 선생님도 있었다. 책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스승도 있었다.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스물서너 살 어느 겨울밤에 나는 그 선생님들 중 한 분께 길고 긴 편지를 썼다. “선생님, 제가 지금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그때 받았던 격려와 믿음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주춤거리다 말았을지 모른다.
잠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나는 곧 그 일을 그만두었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스승은 자기 생각을 학생에게 그대로 옮겨 심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품어온 생각을 잘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한다면 정원사가 아니라 산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스승. 다른 것도 아니고 문학 수업을 하면서 나는 내가 그런 선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나는 영원히 누군가에게 훌륭한 선생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젠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스스로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되는 게 어떤지는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일에든 자포자기와 체념에 익숙해 있던 나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은 어떤 힘이었을까. 내가 만난 스승. 그분들이 나에게 주었던 것은 음식이나 등록금이나 책이 아니라 빛, 더 좋은 빛이었다. 그 빛이 나를 끌어올린 손이었다고, 오늘 나는 나의 스승들께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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