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재판받는 장면. 안중근 역의 정성화가 이토의 죄를 하나하나 거명하자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누가 죄인인가’를 노래한다. 사진 제공 에이콤
국내 창작뮤지컬은 음악이 좋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장면 장면에 충실한 음악은 만들어 내면서도 기이하게도 그것을 하나의 음악으로 완결하는 데는 대부분 소홀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데 몇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안중근 의거일(10월 26일)에 맞춰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영웅’(한아름 작, 윤호진 연출)은 그런 점에서 뮤지컬의 기본기에 충실했다. 이 작품에서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오상준의 음악은 안중근의 주제곡인 ‘장부가’와 전체 주제곡인 ‘그날을 기약하며’ 등 주요 장면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극 전체를 통일되고 안정적으로 끌고 간 뒷심도 뛰어났다. 피터 케이시의 세련된 편곡도 큰 몫을 했다. 반주부가 라이브연주가 아니란 점은 옥에 티다. 눈발을 맞으며 달리는 기차의 영상과 무대 위의 기차를 빈틈없이 바꿔치는 무대연출도 볼만하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얼빈의 서양식 건물에 무대 위 기둥과 겹겹의 이동막을 사용해 입체적인 느낌을 부여한 박동우의 무대디자인도, 일경과 독립군이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을 역동적 군무로 형상화한 이란영의 안무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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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놓고 볼 때 류정한의 안중근이 차갑다면 정성화의 안중근은 뜨겁다. 차가운 안중근은 이토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이토의 죄목을 하나씩 낭독할 때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뜨거운 안중근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민경옥)가 보내온 수의 앞에서 오열할 때 진한 감동을 끌어낸다. 12월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1588-789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동영상 제공: 에이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