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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진녕]국회는 정당의 하수기관 아니다

입력 | 2009-02-16 20:49:00


큰일을 치르고 나서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국회 운영에 관해 반성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번 하고 마는 립 서비스로 끝날지, 아니면 작은 결실이라도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자성에 앞서 필요한 것은 원인 진단이다. 왜 우리 국회는 허구한 날 폭력이나 태업의 형태로 갈지(之)자 걸음인가. 주된 이유는 국회와 정당 간의 잘못된 관계 설정에 있어 보인다.

국회는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주체이자, 헌법이 그 위상과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은 그런 국회를 구성하는 사람들로, 개개인이 역시 헌법기관이다. 정당은 정치적 결사단체일 뿐이다. 굳이 국회와의 관계를 따진다면 인력(국회의원) 공급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모로 보나 국회가 갑(甲)의 처지에 서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국회는 정당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선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의정활동이나 품위 유지에 필요한 일체의 지원을 국회로부터 받는다. 사실상 국회의 모든 조직, 인원, 예산은 국회의원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 한 명에게 직접 지원되는 경비만도 세비를 포함해 연간 5억 원 가까이 된다. 그 돈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정당이 주는 게 아니다. 정당은 공천만 할 뿐이고, 실제 금배지를 달아주는 것도 국민이다. 국회의원이 봉사해야 할 대상은 당연히 국회요, 국민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회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다음 공천만 바라보고 움직이는 모습이다.

정당이 국회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방치하고선 국회 파행을 막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면 대화와 타협으로 얼마든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법안도 정당 차원에서 다루면 쟁점법안으로 변질되고 만다.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고 이념과 정략에 근거해 법안의 성격부터 규정하기 때문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법안들도 상당수 그런 범주에 속한다. 여야 지도부가 나서서 그런 식의 ‘제목 장사’나 하니 쪽박 깨지는 소리가 요란한 것이다.

국회와 정당 간의 관계 역전(逆轉)을 바로잡으려면 국회를 국회의원들에게 돌려주고, 상임위가 국회 운영의 실질적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의 전문화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다수당의 독주를 우려하는 것이라면 제도적으로 보완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정당이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당 차원의 입법 구상도 필요하고, 구체적 법안에 대해선 지도부와 상임위 위원들 간의 의견 조율도 필요하다.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戰)을 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알려진 바이지만, 상임위 중심의 모범적인 국회 운영은 지식경제위와 기획재정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식경제위는 폭력국회, 휴회국회, 태업국회 속에서도 활발하게 법안을 심의하고 입법에 필요한 현장조사 활동을 벌였다. 기획재정위는 논란이 큰 추경예산 편성요건과 종부세법을 여야 위원들 간의 합의로 무리 없이 고쳤다. 위원장을 비롯해 다수 위원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당 차원에서 관여했더라면 아마도 쟁점법안을 양산했을 것이다.

국회는 결코 정당의 하수기관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자각이 필요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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