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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권순활]그래도 새벽은 온다

입력 | 2008-11-19 02:59:00


내가 짐 로저스에게 흥미를 느낀 것은 4년 전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란 책에서였다. 그는 스물일곱 살이던 1969년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만들었다. 서른여덟 살에 ‘일생 동안 모험을 즐기며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벌고 퀀텀 펀드를 떠났다.

이후 개인 펀드를 운용하면서 세계 각국의 저평가된 주식, 원자재, 외환 투자로 명성을 이어갔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책임이 큰 앨런 그린스펀이 한창 각광받을 때 이미 그 허상(虛像)을 지적했다. 1990년부터 2년간 52개국, 1999년부터 3년간 116개국을 각각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돌아다니며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봤다. 자동차 여행의 경험을 담은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에서는 미국 버블과 투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며칠 전 한국 신문에서 로저스를 다시 만났다.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10월 중순에 한국 중국 대만 등의 주식을 샀다”고 공개했다. 현재 저점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투자하면 4, 5년 뒤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기가 실물 분야로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는 심각한 동반 침체를 겪고 있다. 선진국의 마이너스 성장과 대규모 감원 소식이 잇따라 들려온다. 한국 경제 역시 심상찮다. 부실 건설업체와 조선업체의 구조조정이 임박했고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도 어렵다. 내수 침체에 주요 수출시장의 경기 급랭까지 겹치면서 기업 실적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낮아진다.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가 곧 망할 것처럼 주장한다.

이런 걱정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횡적 종적으로 종합해 보면 세계적 추위 속에서도 올해 한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잘 버텨왔다. 국가 경제는 세계 경제 흐름이나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거쳐야 전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1%였다. 세계 평균 성장률 3.6%보다 0.5%포인트 낮았다. 그해부터 2007년까지 5년간 평균 성장률은 한국이 4.4%, 세계가 4.6%였다. 이 기간 우리나라가 세계 평균 성장률보다 높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는 3.7%였다. 한국 성장률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2%, IMF가 4.1%로 예상해 다시 세계 성장률을 웃돈다. 작년까지 5년간 평균 성장률이 7.1%와 4.9%였던 싱가포르와 대만의 올해 전망치는 각각 3.6%와 3.8%로 떨어졌다. 여건이 어려워도 굴하지 않는 기업들의 노력과, 지난해 대선에서 한국이 선택한 ‘현상(現狀)의 거부’가 글로벌 위기의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했는지 모른다.

경제현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뉴스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탐욕에 따른 투기와 거품만큼 과도한 공포와 걱정도 금물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장밋빛 환상은 경계해야 하지만 적정 수위를 넘어 상황을 과장하는 불안감 역시 함정이 많다.

겨울 한파(寒波)가 매서워도 봄은 찾아온다. 한 치 앞이 안 보일 만큼 어둠이 깊어도 새벽은 다가온다. 시장이 공포와 혼란에 빠져 실망과 좌절감이 팽배해졌을 때, 희망이 보이는 곳에 투자해 성공해 온 로저스가 한국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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