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활동의 상징물로 여겨 온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27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 착수 이후 만 하루도 안 돼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이벤트가 이뤄진 것이다.
○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북핵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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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걷힌 곳에서는 구부러진 철근과 콘크리트 조각이 어지럽게 널렸다. 냉각탑 한가운데 우뚝 서 수증기를 내뿜었던 굴뚝은 철근 뭉치를 드러낸 채 아래에서 잘려 나갔고, 냉각탑 상단은 두 동강으로 갈라져 처박혔다. 폭파를 위해 쓰인 다이너마이트의 양은 약 200kg으로 전해졌다.
1986년 말 완공된 영변 원자로는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로 가동이 중단됐다. 그러나 2002년 10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을 둘러싸고 미국이 중유 50만 t 제공을 중단하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을 추방하고 핵확산금지협약(NPT)에서 탈퇴한 뒤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영변 원자로가 재가동되면서 이 냉각탑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 장면을 찍은 미국의 위성사진이 공개되면서 북핵 위기는 ‘현재진행형’임이 국제사회에 상기됐다.
○ 불발된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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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냉각탑 폭파는 CNN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었지만 영변 지역에 위성을 송출할 수 있는 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어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취재에 참여한 언론사들은 오후 7시경 평양으로 돌아와 냉각탑 폭파 당시의 영상을 순차적으로 각국에 송출했다.
그러나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주요 언론들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우리 측 설득으로 냉각탑 폭파 성사
냉각탑 폭파는 2단계 조치인 ‘핵 신고 및 핵시설 불능화’ 11개 조치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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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당시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였던 천영우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김 부상을 만나 “껍데기만 남아 쓸모도 없는 냉각탑을 폭파하고, 현장 중계하는 것은 북측으로서도 비핵화 의지를 세계에 행동으로 보이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설득했고, 김 부상은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불능화 작업과 파괴 비용은 전액 미국 측이 부담한다”고 했다.
○ 한국정부 “핵무기 신고 누락 유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핵 신고서에 핵무기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 유감스럽다”며 “검증과정과 6자회담을 통해 미흡한 부분이 보완돼야 한다는 게 우리 측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26일 신고서가 제출된 직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핵무기 미신고에 유감을 표시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핵 신고서에 핵무기 관련 세부사항이 담기지 않는 것은 그동안 6자회담 참가국 사이에 사실상 양해가 이뤄진 사안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핵무기 미신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의 잇따른 유감 표시는 강경한 대북정책을 통해 현 정부의 지지세력인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