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등 세계 최상위권의 경제 기술 군사 강국과 인구 에너지 대국이 모두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간의 상호관계가 세계전략 상황을 좌우한다는 뜻에서 전략적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이전됐다는 지적은 더는 새로운 말이 아니다.
작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핵무장 가능성은 관심의 초점을 다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로 집중시키고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한반도 주변 강국 간에 일고 있는 상호 경쟁적인 군사 활동은 한국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美日濠印다자협력체제 부상
최근 미국은 해공군 핵심 전력을 태평양으로 증강 배치하고 일본과 호주, 심지어 인도와의 군사협력관계 증진을 추구하는 등 다분히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도 올해 국방 예산을 작년 대비 18%나 늘리면서 자체 건조한 첫 항공모함을 2009년 배치하기로 하는 등 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또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이달 9∼17일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전체가 참여한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주도하는 등 중국 견제 전략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략폭격기의 장거리 비행 훈련 재개 및 크루즈미사일 발사 훈련 실시 등 초군사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러시아와 주일미군과의 군사적 일체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군사 활동도 뚜렷하다.
주변국의 군사동향과 이에 따른 동북아 안보역학구도의 변화 추세는 한국의 장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변화의 의미를 바로 읽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고립되거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시대에 미국의 새로운 동맹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요즘 미국은 한미일 3각 협력 대신 호주를 포함하는 미-일-호 3각 협력을 중시하고, 더 나아가 인도를 추가하는 미-일-호-인의 다자협력 체제를 추진하면서 한국과 다소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이 경우 호주와 인도의 전략적 위상이 부상되는 반면 한국이나 북한의 위상은 그만큼 위축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래 사이의 새우’가 될 수 있다.
한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실효성이 약화되면서 다시 부각되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과 이란의 핵 포기를 속단해서는 안 된다. 이 밖에도 아시아지역의 군비 경쟁 가열화 조짐에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내세워 군사대비태세를 약화시킨다면 이는 시대적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상호 경쟁적인 주변 강대국 군사동향도 문제지만 그에 앞서 북핵의 완전 제거가 더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다. 북핵 제거 없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도, 자유민주주의적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족공조 벗고 韓美동맹 다져야
길은 한 가지다. ‘국방개혁 2020’의 첨단전력을 완비하면서 부족한 것은 동맹으로 보완하는 길뿐이다. 현실적으로 그 선택은 미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동맹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도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및 한미일 공조관계가 중요하다. 이 관계를 바탕으로 중국 및 러시아의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한국은 이제 더는 ‘민족공조’ 울타리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동북아 안보역학 구도의 급속한 변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되, 우선은 동맹 체제를 굳게 다지면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국가안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