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는 싱글 이정환(가명·35) 씨는 설 연휴가 반갑지 만은 않다. 바쁜 직장생활, 일 년에 설과 추석 단 두 번 찾는 고향이지만 결혼한 사촌들이 쌍쌍으로 인사하러 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 온다. 게다가 빗발치는 ‘언제 결혼하느냐’는 친척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조차 끔찍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릴레이 맞선’. 김 씨는 연휴 3일 내내 맞선 약속을 잡았다. 그는 “맞선을 보고 있다면 결혼 성화에서 벗어 날 수 있다”며 “고향에 내려가는 즉시 평소 말만 오가고 접어뒀던 맞선과 소개팅을 한꺼번에 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싱글들 사이에서는 설날 증후군(결혼 성화)을 맞선으로 ‘극복’하려는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다급해진 싱글들은 결혼정보회사에 노크를 하기도 한다.
장손인 김성훈(32) 씨도 “하루라도 빨리 장가가는 게 효도”라며 귀향길을 포기하고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다. 서울이 고향인 교사 최소영(29) 씨는 설에 보게 될 친척들에게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2월 초부터 맞선을 보고 있다.
결혼정보회사는 이맘때만 되면 ‘설 대목’을 누린다. 회사들에 따르면 상담문의가 지난 12월에 비해 15~30% 가량 늘었다.
‘피어리’ 박윤경 차장은 “봄이 시작되기 전과 설 사이가 가장 피크 시즌”이라며 “본인과 부모님이 돌아가며 매일 커플매니저에게 전화해 설날에라도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2월을 끝으로 봄바람이 불면 싱글의 가슴은 설레기 마련”이라며 “회사들도 의도적으로 이런 시기에 미팅 약속을 잡는다”고 말했다. 이 맘 때 만난 사람과는 혼인 성사도 더 잘된다고 귀띔했다.
‘듀오’의 주소영 주임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부모님 성화에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뒤에도 귀찮아서 맞선을 잘 보지 않던 회원들도 연휴 기간에는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숨어있던 킹카 퀸카들이 기지개를 펴는 순간이다.
그는 “마음가짐이 평소와는 다르지 않겠느냐”며 “결혼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니까 애프터 신청도 자주 이뤄진다”고 말했다.
피어리 커플매니저인 이진희 씨는 설날과 얽힌 재미난 맞선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유독 맞선이 많던 명절 연휴, 한 레스토랑에서 두 커플의 만남 약속이 잡혔다. 일찍 맞선 장소에 나와 ‘이상형’을 기다리고 있던 김모 씨. 그에게 다가온 건 ‘천사’를 방불케 하는 아리따운 박 모씨였다. “한OO 씨 맞느냐”고 다른 남성을 찾는 박 씨의 물음에 김 씨는 자신도 모르게 “네! 제가 맞습니다”라고 소리쳤고 식당에서 박 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장 비싼 스테이크도 시켰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박 씨는 김 씨의 이상형이었고, 호감은 더욱더 상승했다.
그러던 차에 김 씨가 기존에 만나기로 했던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시에 박 씨의 휴대전화에도 약속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각자의 파트너가 레스토랑에 왔던 것. 다시 제 짝을 찾았지만, 김 씨의 눈에는 계속 박 씨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중에 만난 파트너는 ‘폭탄’으로만 보였다.
그 날 이후 김 씨는 커플매니저 이 씨에게 맞선 장소에서 엇갈린 박 씨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졸라댔고 결국 만남에 성공해 적극적으로 구애,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 happily ever after(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나.
이진희 매니저는 “설 맞선은 부모님께는 효도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설 맞선으로 만난)배우자 서로에게도 잊을 수 없는 명절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