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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1년]“만만찮은 세상살이… 당당하게 맞설거예요”

입력 | 2005-12-27 03:00:00

올해 초 서울 시립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던 젊은이들이 사회 진출에 앞서 바다 여행을 떠났다. 1년 후 만나 본 이들은 한결같이 “가족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올해 초 강원 강릉시 정동진 바닷가에서 자리를 함께한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혜진(가명·20·여) 씨는 보육원을 나온 뒤 경기 수원시의 한 공장에 취직해 휴대전화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기숙사에 있어 집세를 절약해 저축하고 있다. 혜진 씨의 꿈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어린 아이들을 돌봐 주는 보육교사가 되는 것이다. “작업복을 입고 온종일 좁은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해야 하는 제 신세가 서글플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번 돈으로 양육시설에 있는 남동생(고2)에게 맛난 음식을 사주고 함께 영화를 볼 때면 행복해요. 공장에서 몇 년 더 일해 돈을 더 모으면 대학에서 보육공부를 할 생각입니다.”》

올해 1월 초 혜진 씨를 비롯해 서울시립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던 만 18세가 된 98명이 강원 강릉시 정동진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다. 사회 진출에 앞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본보 1월 20일자 A9면 참조

‘유·소년기와의 이별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은 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홀로서기’를 하고 있을까.

▽‘고아’라는 낙인은 또 다른 상처=민석(가명·19) 씨는 양육시설에서 나온 뒤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기 싫어 서류 보조, 레스토랑 서빙 등 여러 군데에 원서를 냈어요. 면접은 쉽게 통과했는데 주민등록등본 확인 과정에서 항상 떨어졌어요. 등본에 양육시설 이름이 적혀 있고 제가 가구주로 돼 있어 고아인 것을 알게 된 거죠.”

결국 민석 씨는 매일 오후 7시∼오전 6시 호프집에서 일하고 있다. 평범한 20대가 대학 생활, 학원, 동아리 활동 등을 하고 있을 때 민석 씨는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준영(가명·20) 씨는 요즘 학창시절을 보낸 보육원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그곳에 있을 때는 답답한 생활이 싫어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혈혈단신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사회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간호학원을 다닌 뒤 종합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돈도, 가족도 없는 준영 씨에게 세상살이는 너무 버겁다.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홀로 인생=하지만 힘든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한발 한발 세상 속으로 용감하게 걸어가는 이들도 있다.

수현(가명·19·여) 씨는 양육시설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관에서 살고 있다. 자립생활관은 양육시설에서 나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립을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월 5000원의 회비만 받고 3년 동안 방을 빌려주는 곳이다. 서울에 여학생 자립생활관은 2곳이고 남학생 시설은 1곳밖에 없다.

전문대에 다니고 있는 수현 씨는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매 학기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도 스스로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세상을 많이 원망했어요. 5세 때 저를 버린 부모님도 미웠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안 하기로 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여군 장교가 되고 싶어요. 또 기반이 갖춰지면 빨리 결혼해 아이도 많이 낳고 싶어요. 내가 못 받았던 사랑을 아이에게 듬뿍 주고 싶거든요.” ▽좀 더 많은 관심을=지난해 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전국의 아동양육시설을 떠난 아이는 3270명.

이들은 ‘홀로 서기’를 잘할 수 있도록 세상 사람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고 있다.

이들이 현실 생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집 문제. 생활정착금 300만 원으로는 전세는 물론 보증금으로도 부족하다. 서울시아동복지연합회 노은경(盧恩京) 사무국장은 “아동양육시설을 나온 아이들이 싼 전세방이라도 얻을 수 있도록 정착금을 증액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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