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래스트(한국명 최미희)씨
“누군가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벌써 4번째 고국 방문이지만 메리 래스트(최미희·52·여) 씨에게 이번 방문은 특별하다. 12일 양아버지인 해리 홀트 씨가 창립한 홀트아동복지회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때문.
그는 1955년 10월 12일 이 복지회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외국에 입양된 12명의 아이 중 한 명이다. 그는 다른 아이 8명과 함께 홀트 씨의 가족이 됐다.
평범한 농장주였던 홀트 씨는 6·25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다룬 영화를 본 뒤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그는 1956년 한국으로 건너와 ‘홀트씨 해외양자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입양 사업을 시작했다.
50년 전 첫 해외 입양아들
1955년 10월 해리 홀트 씨가 입양한 8명의 6·25전쟁 고아들. 이들은 1958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뒤 집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당시 5세였던 메리 래스트(최미희) 씨. 사진 제공 홀트아동복지회
그 후 50년 동안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국내외에 입양된 아이만 9만5574명.
래스트 씨는 “1961년부터 2년 동안 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 때 복지시설을 짓느라 지붕에 짚을 덮고 텐트 안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는 항상 남을 배려했으며 열정적이고 사랑이 충만한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혼 후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 3명을 입양했다. 그는 “가족이라는 정체성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며 “입양 사실을 숨기려 하지 말고 ‘너는 선택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입양 가족이지만 래스트 씨 형제의 우애는 돈독하다. 현재는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6개월에 한 번씩 모여 가족 파티를 연다.
이번 고국 방문에도 자신과 함께 입양된 형제 8명 가운데 5명이 동행했다. 2명은 질병으로 사망했고 1명은 최근 몸이 불편해 오지 못했다.
홀트 씨의 둘째 딸이자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인 말리 홀트(70·여) 씨도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말리 씨는 “한국에 있어 형제들을 자주 볼 수 없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행복하다”며 “형제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곁에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홀트아동복지회는 1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이날 행사에는 래스트 씨를 비롯해 1000여 명의 국내외 입양 가족과 후원회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