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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헌법 비준 29일 佛국민들의 선택은?

입력 | 2005-05-26 03:21:00


25일 프랑스 파리 시내 곳곳에선 유럽연합(EU) 깃발을 앞세운 시민들이 행인들에게 열심히 유인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29일 실시되는 프랑스의 유럽헌법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 달라는 호소였다.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반대파의 여론몰이도 만만치 않다. 지난 주말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는 수천 명이 모였다. 이들은 ‘유럽을 사랑하는 방법은 반대표를 찍는 것’이라고 적힌 배지를 달고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라는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합창하며 결속을 다졌다.

24일 주간 파리마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 46%, 반대 54%로 4월 이후 가장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여론이 반대쪽으로 더욱 기울자 프랑스 정부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비상에 걸렸다. ‘통합 유럽’의 꿈이 깨질 판이기 때문이다.

투표일 직전까지 양측의 선전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26일 TV에 출연해 마지막 호소를 한다. 일부에선 인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시라크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수록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로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좌파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은 27일 파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 이 집회에는 유럽 좌파의 거두인 오스카 라퐁텐 전 독일 사민당 당수가 참석할 예정이다. 당론과는 달리 반대파로 나선 프랑스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도 합세하며 반세계화의 기수로 떠오른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 씨도 참석한다.

유럽헌법을 둘러싼 쟁점은 유럽시장의 신자유주의적인 통합 문제로 압축된다. 프랑스 기업가 100명은 “프랑스 경제를 회생시키는 방법은 무역 노동 등 경제 장벽을 더욱 낮추는 길뿐”이라며 헌법 비준을 호소했다. 반면 좌파와 극우파는 동유럽권의 값싼 노동력 유입, 프랑스 복지 수준 저하,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EU 가입 등에 반대하며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29일 투표에서 반대파가 승리할 경우 458개 조항의 유럽헌법은 휴지 조각이 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EU 차원에서 반대에 대비한 ‘플랜 B’를 비밀리에 마련해 뒀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지만 진위는 가려지지 않고 있다.

헌법이 통과하지 못하면 유럽은 ‘유럽합중국’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거대한 경제블록 상태만 유지하게 된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유럽 주변국 움직임▼

유럽 각국의 이목도 29일 프랑스의 유럽헌법 비준 국민투표에 쏠려 있다.

프랑스의 결정은 앞으로 줄줄이 잡혀 있는 각국의 국민투표에 방향타로 작용할 뿐 아니라 부결될 경우 ‘완전 좌초냐, 아니면 되살릴 수 있나’를 둘러싸고 당장 거센 논란이 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변국 지도자들은 일단 프랑스 민심 설득에 나섰다. 다음 달 1일 국민투표를 앞둔 네덜란드의 얀 페테르 발케넨데 총리는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에 기고문을 내 “유럽헌법으로 유럽은 더 강해진다”며 ‘위(oui·찬성)’ 투표를 호소했다.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7일 각각 프랑스 서부 릴과 남부 툴루즈를 지원 방문한다.

한편으로 프랑스의 부결을 염두에 둔 움직임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각국은 프랑스가 유럽헌법을 거부하더라도 자국의 예정된 국민투표는 그대로 실시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론 부담스러운 국민투표를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를 지지하는 녹색당과 좌익당은 22일 프랑스가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헌법을 거부하면 스웨덴 내 유럽헌법 비준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잭 스트로 외무장관도 최근 “프랑스가 ‘노’라고 하면 영국의 국민투표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