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음반이 세계적 시장에서 10만장이나 팔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30만장이 팔리면 음반사에서 음악가에게 플래티넘(Platinum) 디스크를 주는데 이것을 받은 사람은 도밍고 파바로티 카레라스 등 세계 3대 테너 정도가 꼽힌다.
그런데 음반 70만장을, 그것도 인구 6천만명의 영국에서 두달만에 팔아치워 충격을 준 성악가가 있다. 올해 나이 불과 열두살. 사과빛 뺨이 고운 초등학생 샬럿 처치다.
천사같은 음성으로 영국을 열광시킨 소녀.
웨일즈지방의 주도(州都) 카디프에 사는 샬럿 처치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데뷔앨범 ‘천사의 목소리’(소니뮤직)로 두달만에 70만장의 판매기록을 세워 세계 최연소 플래티넘 디스크를 받았다.
성가 ‘생명의 양식’,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브라나’중 인트루티나 , 영국 민요 ‘수오 간’ 등 성가부터 민요까지 고루 담긴 이 음반은 이달중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배포될 예정이다.
22일(현지시간) 카디프의 집에서 만난 처치는 어린 나이에 얻은 세계적 명성 따위는 관심없다는 듯, 선물로 건넨 한국 자개함에 환호성을 올리고 대답이 막힐 때는 엄마의 도움을 청하며 어리광을 부리는 천진한 모습이었다.
“컴퓨터 게임도 좋아하고 만화보는 것도 좋지만 노래할 때가 제일 신이 나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한 처치가 처음 영국의 주목을 받은 것은 열살때. 뮤지컬 배우인 고모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에 함께 나가면서부터다. 사회자가 노래를 부탁하자 처치는 즉석에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의 ‘자비로운 예수’를 열창했고 아이답지 않은 원숙한 노래에 비해 천진하고 귀여운 모습은 순식간에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다른 TV 프로그램과 콘서트에서 출연요청이 쏟아졌고 소니뮤직과 음반계약이 이어졌다.
지난 연말 출간된 영국 최고권위의 음반지 ‘클래식 CD’는 권두언을 통해 “처치는 섬세하고 전통적인 발음과 아름다운 음색, 표현의 깊이를 고루 갖추고 있다”며 “이는 세계적 소프라노 키리테 카나와 조차 갖추기 힘든 요소”라고 평가했을 정도.
그러나 처치는 지금도 성악레슨을 받는 학생. “방학과 휴일만 활동하니까 공부와 노래를 같이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며 꾸준히 공부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성악가를 꿈꾸는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충고하고픈 말’을 묻자 “간식을 너무 많이 먹거나 TV 앞에만 붙어 있으면 좋은 성악가가 못된다”고 엄마 잔소리같은 말을 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어린이의 음성이 정규성악에 쓰이게 된 것은 교회 단상에 여성의 출입을 금했던 중세 이후의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것. 이때문에 성가대의 소프라노 성부(聲部)는 변성기 이전의 남자 어린이가 맡아왔다. 특히 천사를 어린이로 묘사해온 기독교 전통으로 인해 보이 소프라노의 음성은 천사의 음악적 은유(隱喩)로 여겨졌다.
80년대 영국의 알레드 존스 등이 이름난 보이 소프라노로 활약했지만 여자 어린이가 성악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은 처치가 처음이다.
〈카디프(영국)〓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