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초청 인촌기념강좌는 당초 예정시간인 50분을 넘겨 1시간7분 동안 진행.
이날 인촌기념관은 현직대통령의 첫 대학강단 강연에 쏠린 관심과 열기로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김대통령은 이날 명예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잠시 퇴장했다 오후 3시반경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청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했다.
김대통령이 단상에 올라 양복상의를 벗은 뒤 와이셔츠차림으로 대형칠판앞으로 다가가 분필로 ‘우리 민족을 생각한다’는 강연제목을 쓰자 청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어 사회를 맡은 고려대 안문석(安文錫)정책대학원장이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현장에 있다. 민주주의가 이 정도 발전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며 “오늘 박사학위를 받으신 김대중교수님의 첫 강의가 시작되겠다”고 강연시작을 알렸다.
김대통령은 단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채 “공자님에게 논어강의하고 부처님에게 설법한다는 말이 있는데 비록 대통령이지만 석학들에게 강의하는 것은 외람된다고 생각한다”며 겸양의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는 이어 “존경하는 인촌선생의 기념관에서 강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한 뒤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것을 소재로 유머를 해 청중의 큰 박수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
김대통령은 “고려대같은 석학이 모여있는 대학에서 제게 박사학위를 주신 것은 경제의 구조개편과 개혁 발전이 잘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냐”고 말해 웃음을 유도한 뒤 “여러분들은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말이 저런 때 쓰는거구나 생각할 것”이라고 말해 또다시 폭소와 갈채.
김대통령의 강연은 민족의 저력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는데 특히 동아시아에서 타 민족과는 달리 한민족이 중국화되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력을 설명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기도.
김대통령은 동아시아 역사와 성춘향, 효녀 심청, 빌 게이츠 등 다양한 소재를 오가며 설득력있게 주제에 접근해 뛰어난 화술을 유감없이 과시했다는 평을 들었다.
김대통령은 “처녀가 시집온 지 몇달 안됐는데 애를 찾으면 되느냐. 한 1년 정도 지켜봐달라” “어려운 질문이 많이 나올 것 같아 주위에서 나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만용이 좀 있어서”라는 등의 유머로 부드럽게 강연과 자유토론을 끌어갔다.
강좌를 마친 김대통령은 환호하는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퇴장했다.
〈문철 기자〉full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