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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심 칼럼]청와대 비서실 강화론

입력 | 1998-05-29 19:39:00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고 은근히 엄포를 놓았는데도 한 택시운전사는 대통령이 우유부단하다고 평했다. 밀어붙일 것은 소신껏 밀어붙이는 강력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뭔가 정책은 잔뜩 늘어놓은 것 같은데 도무지 줄거리가 잡히지 않고 혼란스럽기만 하다고도 했다.

▼ 여당-내각만으로 부족 ▼

실제로 그렇다. 구조조정문제만 해도 이제 칼을 빼는가 보다 하면 다시 칼집에 집어넣고 대기업이나 은행 몇개가 드디어 정리되는가 보다 하면 협조융자다 뭐다 해서 슬그머니 뒷걸음질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정책이 신뢰를 잃고 심하게는 우습게 여겨지기도 한다. 외국인들조차 한국의 개혁은 말뿐이라느니 도대체 한국에서는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느니 대놓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김대중(金大中)정부 3개월이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사정을 이해하기로 하자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우선 밀어붙이기식 리더십보다 토론하고 설득하는 리더십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김대통령의 인내심은 오히려 돋보인다고 할 만하다. 더구나 김대중정부가 약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자민련과의 공동정부에다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는 거대야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완강한 보신주의와 복지부동 역시 개혁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거기에다 IMF와 외국의 ‘눈’이 정책 선택을 제약한다.

그렇다 해도 개혁의 표류와 국정의 난맥은 심각하다. 나라가 나아가야 할 목표와 방향은 대충 짐작할 만한데도 그 목표로 인도하는 지도가 없다. 없다기보다 지도라고 내놓은 엉성한 약도(略圖)들이 내놓는 것마다 다르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이래가지고서야 개혁이 표류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사태는 분명해졌다. 대통령이 만들어 간직하고 있는 지도가 혹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내놓아야 한다. 좌고우면하기에는 사정이 너무 급하다.

문제는 지도가 없는 경우다. 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경우다. 이래서 필요한 사람들이 지도를 완성해낼 책임있는 설계사들이다. 대통령은 유능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며 참신한 설계사들을 곁에 모아 수시로 협의하고 자문을 구하면서 나라를 끌어나가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다 하기에는 오늘의 세계는 너무 복잡하다. 더구나 지금은 국가 위기상황이다. 대통령의 지도력이 집합적으로 발휘돼야 할 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김대통령 주변에는 그런 개혁 중심세력이 형성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여당 속의 여당인 국민회의는 개혁의지는 있으나 정책개발능력이 뒤따르지 못한 인상이고, 내각은 관료적 보수주의와 부처이기주의에 함몰돼 한건주의식 정책들을 남발하여 국정혼란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청와대 비서실 역시 지나치게 축소돼 일상적인 업무조차 벅차다는 비명이다. 거시적 안목에서 국가 정책을 개발 기획하고 조정 통제하고 추진 감시할 중추세력이 없는 셈이다.

▼ 개혁사령탑 만들어야 ▼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왜 미국의 백악관 비서실이 ‘숨어있는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비서는 비서일 뿐’이라며 ‘작고 검소한’ 비서실을 지향한 것은 과거 정권의 ‘군림하는 청와대’에 대한 반성과 IMF시대의 고통분담 차원에서 나온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비서실을 축소하고 내각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시도는 미국에서나 우리나라 역대 정권에서 성공한 예가 없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를 개혁의 사령탑으로, 개혁세력의 집결지로 만들 필요가 있다.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이나 챙기는 단순업무에 파묻히도록 해서는 안된다. 소신 있고 일사불란한 개혁을 위해서라면 청와대 기구 인원 예산을 늘리고 위상 역할 인적 구성을 강화해야 옳다. 명분은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김종심(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