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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래정/개도국보다도 못한 통산정책

입력 | 1997-10-04 20:15:00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는 지역그룹인 아태경제협력체(APEC)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자유무역을 통해 시장이 확대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APEC는 개발도상 회원국들의 시장을 열게 하는데 치중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역투자 자유화계획」이 아시아권의 주요관심사인 「경제 및 기술협력계획」보다 훨씬 중요하게 취급돼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은 APEC를 미국 패권주의의 실험장으로 간주, 우려를 표시해왔다. 미국은 APEC를 통해 아태지역의 무역투자 자유화를 이끌어내면서 동시에 남북미 대륙 전체를 포괄하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서두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간 압박수단과 병행해 회원국이 많지 않은 소지역그룹을 통해 효율적으로 시장개방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상대국 산업과 시장을 옥죄기 위해 자국 국내법인 종합무역법 슈퍼301조까지 발동하는 미국이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패권 앞에서 경제주권을 지킬 만한 방어벽을 확보하지 못한 우리에게 있다. 미국시장에 치우친 교역구조와 대미흑자기에 변변한 이익단체 하나 만들어놓지 못한 우(愚)를 차치하더라도 사정이 비슷한 동남아 등 지역그룹으로부터도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제력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해온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지난해 EU를 끌어들여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주도, 나름대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했다. 말레이시아가 제안, 중국이 적극 동의하고 있는 동아시아경제협의회(EAEC) 구상도 마찬가지 포석이다. 우리는 90년대 들어 흑자의 대부분을 동남아시장에서 내면서도 이 지역의 전략적인 가치를 간과해 왔다. 미국의 슈퍼301조 발동에 접하면서 ASEAN의 존재와 아시아지역 연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박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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