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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청문회 사회학]의리중시 문화가 「모르쇠」만든다

입력 | 1997-04-10 19:55:00


지난 8일의 한보비리 서울구치소 국회청문회에서 金鍾國(김종국)전 한보그룹재정본부장이 「鄭泰守(정태수)리스트」에 대해 이미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마저도 사실 그대로 털어놓지 않아 국민에게 「소화불량증」만 남겨 주었다. 우리의 청문회는 왜 국민의 불신과 의혹만 증폭시키게 되는 걸까. 특위위원들의 준비부족과 증인들의 불성실한 답변에 대한 마땅한 제재조치가 없는 점, 서구사회와는 달리 청문회 증언에 대한 면책특권이 없다는 점 등이 그 일차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은 『만약 김씨가 청문회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말했다면 김씨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과연 긍정적이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차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金文朝(김문조)교수는 『김씨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조차 청문회에서 밝히지 않은 것은 정총회장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김씨는 비공개인 검찰조사와는 달리 모든 내용이 공개되는 청문회 증언으로 자신이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학자들은 서양의 경우 「죄의식 문화」가 사회문화의 출발점이지만 동양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를 중요시하는 「수치문화」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본심과 겉으로 나타내는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개인의 「양심」보다는 「의리」를 더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도 바로 이같은 문화적 속성에 기인한다는 것. 지난 88년 5공청문회 때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張世東(장세동)씨가 당시 일부 국민에게 「의리의 사나이」로 비친 것도 이같은 사회문화의 특성때문이라고 사회학자들은 지적했다. 서울대 인류학과 李光奎(이광규)교수는 『한국사회는 아직도 의리를 중요시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며 『이때문에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조직을 배신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현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