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홍찬식기자」 프랑스 파리시내의 마레지구는 바스티유광장과 카르나발레미술관, 국립문서보관소 등이 자리잡은 중심가로 하루종일 행인과 차량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건물이 밀집한 한쪽 귀퉁이를 돌아 들어가면 도심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한적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보주광장. 사각형의 광장말고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 전체를 포함하는 지명이다.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는 주위의 건물들은 자세히 보면 모두 같은 설계방식으로 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창문이나 외부 형태가 동일하고 외벽의 색채도 같은 톤을 띠고 있는 것이다. 17세기초 만들어진 이 광장은 평범한 것같아도 파리 도시계획의 기준이 되는 역할을 했다. 건축적인 측면에서 파리의 오늘을 있게 한 의미있는 건축물인 것이다. 정사각형 형태로 한쪽의 길이가 1백m 남짓한 이 광장은 앙리4세(1553∼1610)때 귀족 계층을 위한 공동주택으로 건립됐다. 파리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도시계획의 의미도 갖고 있었다. 빈민가를 헐어내고 세워진 이 곳은 왕에게 헌정돼 건립당시 「왕의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주변건물 가운데 남쪽에는 왕의 집이, 북쪽에는 왕비의 집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파리시내에는 도시계획을 위한 모델로 이같은 광장이 세 곳에 세워졌는데 보주광장은 정사각형, 도핀광장은 원형, 방돔광장은 삼각형 등 기하학적인 형태로 설계된 점이 이색적이다. 하지만 뒤쪽으로 가보면 건물 내부에는 각기 다른 형태와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설계자가 주인의 개성과 필요에 따라 내부를 다르게 꾸며주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질서」를, 내부적으로는 「자유」를 부여해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을 조화시켰다. 근대들어 파리의 도시계획을 맡았던 오스만남작은 바로 이러한 원칙 아래서 대대적인 도시정비에 나섰다. 거리에서 보이는 외관은 엄격한 룰을 정해놓고 규제했다. 그대신 내부는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마음껏 변형해 쓸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파리는 오스만남작이 만들어놓은 도시계획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모델은 결국 보주광장이었다. 공동주택이 건립되자 당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이곳에 입주해 살았다. 「레 미제라블」을 쓴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이곳에 16년간 거주했으며 루이13세때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리슐리외의 저택도 이곳에 있다. 특히 빅토르 위고의 집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파리의 명소가 됐다. 이 곳은 수백년의 세월이 지난 요즘도 파리의 부유층들이 살고 싶어하는 고급주택가다. 이 광장에서 고색창연한 건물과 수백년된 나무들이 들어찬 공원이 서로 조화를 이룬 모습은 도시건축의 이상적인 전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