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보증금도 주고 떠난 김밥 할머니

(5판용) 50여 년간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여 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해 ‘김밥 할머니’로 불렸던 박춘자 할머니가 11일 별세했다. 박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남은 집 보증금마저 모두 기부하고 떠났다. 향년 95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박 할머니는 어렸을 때 집안이 넉넉지 않아 10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당시 경성역(현 서울역) 앞에서 김밥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경기 성남시로 이사간 뒤 남한산성에서 등산객에게 김밥을 팔아 생계를 꾸렸다. 1년 365일 장사를 쉬지 않았던 박 할머니는 조금씩 재산이 불어도 늘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박 할머니가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긴 건 40여 년 전 성당을 다니면서부터다. 신부님이 데려온 발달장애인 아이들을 본 박 할머니는 이들을 직접 키우기로 결심했다. 11명이 머물 집을 마련하고 아흔 넘어 기력이 다할 때까지 친자식처럼 돌봤다. 젊은 시절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 당한 아픔이 있던 박 할머니에겐 늦게 얻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박 할머니는 노년에는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2008년 TV에서 초록우산의 후원 사업을 알게 된 그는 “돈이 없어 학업을 놓아야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며 3억 원을 기부했다. 2011년에는 해외아동 지원에 써달라며 1000만 원을 기부했다. 같은 해 장애인을 위한 거주 공간을 지어달라며 성남 작은예수의집에 3억 원을 기부했다.

박 할머니의 기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9년에는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나눠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초록우산에 매월 정기후원을 신청했다. 그해 건강이 악화된 고인은 본인이 사망하면 집 전세 보증금 5000만 원을 기부하겠다는 ‘유산기부’ 서약을 맺었다.

이 같은 선행이 알려지면서 2021년엔 LG 의인상을 받았는데, 이 상금 5000만 원도 모두 기부했다. 같은 해 12월 모범 기부자로 청와대 초청을 받은 박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생전 “(김밥 장사로) 돈이 생겨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게 너무나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줄 수 있었습니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례는 경기 성남의 소망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13일 오전 발인 뒤 경기 안성 추모공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박성민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