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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계적 테너 보첼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

[칼럼] 세계적 테너 보첼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

Posted July. 01, 2026 08:50,   

Updated July. 01, 2026 08:50


지금 시점에서 한국인보다 축구 때문에 화가 난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탈리아 사람일 것이다. 이탈리아는 월드컵 통산 4회 우승에 빛나는 축구 강호다. 하지만 열기를 더해가는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라는 이름 자체를 찾아볼 수 없다.

이탈리아는 유럽 지역 예선에서 ‘괴물’ 엘링 홀란이 버틴 노르웨이에 조 1위를 빼앗겨 본선 직행 티켓을 놓쳤다. 플레이오프에서 희망을 이어갔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에도 결석했던 이탈리아는 그렇게 역대 월드컵 우승국으로는 사상 처음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한 나라라는 불명예 기록을 안게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이탈리아인이었다. 세계적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는 멕시코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제곡을 부른 이재와 함께 월드컵 공식 주제가 ‘DNA’를 열창하며 전 세계 축구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보첼리는 공연을 마친 뒤 “이탈리아가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건 안타깝지만 조국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설 수 있어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평생을 축구 팬으로 살아온 보첼리는 일요일이면 라디오로 축구 중계를 듣는 게 취미다. 응원 팀인 세리에A 인터 밀란의 라인업은 외우고 다닐 정도다.

이탈리아인들은 축구협회의 부패와 무능이 암흑기를 초래했다며 화가 나 있다. 세리에A는 승부 조작과 심판배정 스캔들 등으로 위상이 곤두박질쳤고 리그 재정이 악화됐다. 이 때문에 유망주, 리그 인프라 육성이 표류했는데 협회가 이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보첼리도 이탈리아 축구에 낙담한 수많은 팬들 중 하나다. 보첼리는 일간 라 가체타 델로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뿐이 아니라 이탈리아인 모두가 크게 실망했다. 축구는 이탈리아의 일부인데 이번에 또 떨어졌다. 월드컵의 기쁨을 오래 즐길 수 없다는 건 참 힘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첼리는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도 다른 실패처럼 솔직하게 마주하고 건설적인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면 새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포기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 다시 출발선에 서는 것, 그게 내가 스포츠에 감동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보첼리가 메가 스포츠 이벤트 무대의 단골손님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 보첼리는 생후 5개월부터 선천녹내장으로 가까이 있는 것밖에 보지 못했다. 다만 빛과 색은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다 열두 살 때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공에 머리를 맞는 사고로 시신경이 손상돼 남은 시력마저 모두 잃었다.

하지만 보첼리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갈 생이 장애로 규정되길 원치 않았다. 보첼리가 “내가 이걸 어떻게 하냐”고 불평할 때마다 어머니는 “네 건 네가 해라. 변명하지 말고”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덕분에 보첼리는 장애를 혈액형의 차이 정도로 인식하며 자랐다. 자신을 암흑에 가둔 축구는 여전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이를 신기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보첼리는 “그저 불운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보첼리가 개막식에서 부른 DNA의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anche se cadiamo poi ci rialziamo, It‘s more than just a game, it’s our DNA.(넘어져도 난, 또다시 일어나. 이건 그냥 게임이 아냐. 우리의 DNA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