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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천사’ 늘었다… 익명 기부 5년새 최다

‘얼굴 없는 천사’ 늘었다… 익명 기부 5년새 최다

Posted December. 30, 2025 09:58,   

Updated December. 30, 2025 09:58


경북 지역을 덮친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 복구가 한창이던 4월 울산 북구의 한 봉사단체에 80대 할머니가 찾아왔다. 손에는 10만 원이 든 봉투가 들려 있었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그는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 수당을 아껴 모은 돈이라면서 “뉴스를 보다 마음이 쓰여 가져왔다”며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나눔을 실천하는 ‘익명 기부’가 올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정보공개 청구로 제출받은 대한적십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이달 10일 기준) 접수된 익명 기부금은 367억 원으로 지난해(129억 원)보다 2.8배로 급증했다. 전체 기부금 중 익명 기부 비중도 같은 기간 10.3%에서 19.2%로 크게 늘며 최근 5년 새 최고였다. 익명 기부는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등을 알리지 않고 접수시킨 것을 말한다.

고액 후원자들 사이에서도 ‘조용한 나눔’은 대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의 누적 1억 원 이상 익명 후원자는 최근 5년간 586명으로, 전체 고액 후원자의 15%에 달한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도 최근 5년간 31명의 자산가가 총 14억 원 넘게 익명으로 기탁했다.

익명 기부가 늘어난 배경으로는 잇따른 대형 재난, 그리고 조용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려는 인식 변화가 꼽힌다. 대한적십자사 강태훈 디지털모금팀장은 “지난해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이어 정부 수립 이래 최악이었던 3월 경북 산불, 7월 ‘괴물 폭우’로 인한 전국 각지 산사태 등 큰 재난이 잇따르면서 상부상조 정신이 살아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진경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부소장)는 “과거에는 기부가 집단적 행위였다면, 최근에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돌아보는 개인적 실천으로 성격이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