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 전쟁’이 사실상 7년간이나 이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08년 12월 기준금리를 0.1%로 내린 뒤 2015년 12월에야 ‘제로 금리’ 동결기를 벗어났다. 이 기간 미국의 경쟁국인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은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며 자국 통화 가치를 치열하게 끌어내렸다. 수출품의 외국환 표시 가격을 낮춰 수출을 늘리려 했다. 환율 전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주요 20개국(G20)은 15년 전 이맘때 경북 경주에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열었다. 각국이 환율을 너무 조정하지 않도록 “경상수지 흑자까지 조정하자”는 안까지 낼 정도였다.
최근 들어 환율 전쟁이 재개될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미 연준은 지난달 약 9개월 만에 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 이어 추가 인하를 시사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은 금리를 동결하고 있지만 연말에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만만치 않고 미국과 무역 갈등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각국은 다른 정책 수단 대신 금리 인하를 택하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환율 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한국은 참전할 여력이 있을까. 이미 원화 가치는 추락해 버렸다. 환율을 끌어올리려 애썼던 2010년 평균 환율은 1150원대였지만 올해는 1430원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평균 환율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평균 환율(1394.97원)을 추월한다. 그런데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연초 대비 9%가량 하락했다. ‘약달러’가 뚜렷한데도 원화 가치가 고꾸라지니 원화가 얼마나 외면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원화 가치의 급락은 수출에 호재이긴 하다. 실제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출을 늘리고 이를 토대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원화 약세 호재’를 반길 수만은 없다고들 한다. 주요 수출국들이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기업들의 원자재 지출 부담이 커진다. 수입 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도 끌어올린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실물인 부동산으로 돈이 몰릴 것도 뻔하다. 결국 앞으로 환율 전쟁이 불거져도 한국으로선 참전하기엔 위험이 크다. 재정이 팍팍해 돈 풀기에도 한계가 있는데 통화정책마저 제약되면 어떻게 위기에 대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원화 가치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추락했을까. 흔히 미국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과 한미 관세협상에 대한 우려가 원인으로 거론된다. 국내 요인으로는 작년 12월 계엄 사태로 불안감이 고조된 문제가 컸다.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한국은행은 과거 금리 인상기에 민첩하게 움직였을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제로금리 시대가 끝나고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이 한창일 때 한은은 금리 인상 실기론에 시달렸다. 정치적 압박으로 금리 인상에 부담을 느꼈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중앙은행의 역할이 더욱 중해졌다. ‘이제 중앙은행에 독립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말을 무게 있게 받아들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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