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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교과서 이후 아이들이 잃게 될 것들

디지털 교과서 이후 아이들이 잃게 될 것들

Posted January. 31, 2024 08:33,   

Updated January. 31, 20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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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집에서 종종 부부싸움의 발단이 된다.

7세와 5세인 두 딸은 두어 살 즈음부터 ‘엉뚱발랄 콩순이’로 시작해 ‘시크릿 쥬쥬 별의 여신’, ‘캐치티니핑’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았고 최근에는 ‘미라큘러스’, ‘슈퍼히어로걸스’ 등 프랑스 미국 애니메이션을 섭렵 중이다. 조작법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몰래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가져가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한 후 만화를 튼다. 윽박과 체념을 오가다가 “보게 놔두자”, “그만 좀 틀어주자” 하며 아내와 싸우는 일이 생긴다.

두 딸의 이런 모습을 보다가 최근 교육부가 디지털 인공지능(AI) 교과서 도입을 준비하는 걸 보면 착잡한 기분이 든다. 교육계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에듀테크(교육+기술) 열사’로 통한다. 이 부총리가 추진한 역점 사업으로 내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일부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가 사용된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종이 교과서 대신 태블릿PC를 잡아야 한다.

물론 디지털 AI 교과서를 옹호하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AI 교과서를 활용하면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면서 첨단 기술을 일찍 접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AI 교과서에 필요한 태블릿PC를 무료로 모든 학생에게 나눠주면 가정 환경의 격차가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기기 접근성의 차이)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잃는 건 없을까. 연필과 종이책의 감촉,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습관, 교과서와 문제집 한 권을 마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책거리, 필기구와 노트를 고르는 취향, 책에 남기는 낙서와 친구들 이름…. 이런 것들은 디지털 교과서가 줄 수 없는 경험이고 자극이다.

게다가 학교 수업은 지식 전달을 넘어 일생에 중요한 기억과 추억이 된다. 선생님의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옆 친구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고, 친구의 가방 속과 노트 필기를 관찰하며 사람은 다르다는 걸 배우고 서로 소통하게 된다.

그런데 머잖아 아이들은 똑같은 태블릿PC만 뚫어져라 보며 수업을 하게 된다. 시험도 필기도 태블릿PC로 하고, 집에서 숙제도 태블릿PC로 할 것이다.

반면 스웨덴은 지난해부터 종이책과 필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소는 “디지털 기기가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기보다 손상시킨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도 수업 중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과 수학 점수가 반비례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어차피 성인이 되면 원치 않아도 사방에서 ‘까톡!’거리는 디지털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한 살이라도 일찍 디지털로 내몰아야 할지, 종이와 연필의 아날로그 경험을 지켜줘야 할지 교육의 관점에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 부총리에게는 다음의 글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김훈 ‘연필로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