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33·사진)의 선수 인생은 끝까지 순탄하지 않다. 겨울올림픽 최다 메달을 노리던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의 올림픽 참가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 국영매체 스푸트니크통신 등 현지 외신은 23일(한국 시간) “빅토르 안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평창 겨울올림픽의 개인자격 출전이 불허된 러시아 선수 111명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매체는 “안현수의 올림픽 출전권 박탈이 최종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라며 “최종 명단은 28일 발표된다”고 밝혔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안현수의 올림픽 출전이 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로 ‘매클래런 보고서’가 거론되고 있다. 보고서에 안현수의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 해당 보고서에는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러시아가 벌인 조직적 도핑 실태를 담고 있다. 2014년 12월 보고서가 폭로된 후 세계반도핑기구(WADA) 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벌였고 IOC는 보고서의 신빙성을 인정해 러시아를 겨울올림픽 참가국에서 제외했다. 다만 개인 자격으로 참가를 희망하는 러시아 선수는 도핑 문제에서 결백함을 입증하면 출전이 가능하다. 앞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안현수가 포함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희망 선수 500명의 명단을 IOC에 제출했다.
국적은 바꿨지만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던 안현수의 계획도 틀어졌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올림픽까지의 시간이 촉박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니어 시절부터 국제무대를 평정했던 안현수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 출전해 1000m 결선에 진출하며 김동성을 잇는 한국 쇼트트랙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기대에 부응해 4년 뒤 열린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1000m, 15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 3관왕에 올랐다. 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는 등 올림픽 전 종목 시상대에 오르며 ‘쇼트트랙 황제’의 등극을 알렸다. 5000m 계주에서 안현수가 선보인 ‘대역전극’은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하지만 2008년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세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고 재활을 거쳤지만 2009년 4월 대표선발전에 통과하지 못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속팀이던 성남시청까지 해체돼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안현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 국가대표 안현수가 아닌 러시아 국가대표 빅토르 안으로.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그는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전성기 기량을 되찾았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500m에서 동메달을 따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금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미국의 안톤 오노(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와 함께 겨울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전설’이 됐다.
‘오뚝이’ 신화를 쓴 안현수지만 이번 사태로 불명예 퇴진 위기를 맞게 됐다. 매클래런 보고서에 안현수의 이름이 포함됐다면 소치 올림픽에서 그가 약물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가 딴 메달이 모두 박탈될 수 있다. IOC는 아직 안현수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쪽에서는 안현수가 도핑을 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기보다는 도핑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상에 포함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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