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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다, 한 줄 써내려 갈 때마다 열 줄기 눈물이 흘러” 요절 화협옹주 무덤 지석서

“슬프도다, 한 줄 써내려 갈 때마다 열 줄기 눈물이 흘러” 요절 화협옹주 무덤 지석서

Posted January. 27, 2017 08:40,   

Updated January. 27, 201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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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대왕은 세자에게 “밥 먹었느냐” 하고 물으신 뒤 세자가 대답하면 그 자리에서 귀를 씻고 그 물을 화협옹주가 있는 집의 광창(廣窓·들어올릴 수 있는 넓은 창)으로 버리셨다. 그래서 세자는 누나인 화협옹주를 만나면 웃으며 “우리는 귀를 씻으시도록 채비해드리는 남매요”라고 말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閑中錄)에는 영조와 사도세자, 화협옹주의 묘한 가족관계가 드러나 있다. 영조가 자신이 편애한 화순옹주나 화완옹주를 만나기 전엔 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반면, 사도세자를 대면할 땐 귀 씻은 물을 화협옹주 처소 쪽에 버릴 정도로 노골적으로 싫어했다는 거다. 심지어 영조는 화협옹주가 한집에 살지도 못하게 했으며, 사위인 영성위까지 싫어했다고 전한다.

 사도세자는 그렇다 쳐도, 유독 딸을 아낀 영조가 화협옹주를 꺼린 이유는 무얼까.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 “화협옹주는 태어날 때 또 딸인 것을 영조대왕이 서운히 여겨 용모도 빼어나고 효성도 아름다웠으나 부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적어 놓았다. 화협옹주는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째 딸이다.

 그런데 한중록이 전하는 영조의 심경과 사뭇 거리가 있는 기록이 최근 화협옹주 묘에서 발견됐다. 고려문화재연구원이 경기 남양주시 삼패동 화협옹주 묘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영조가 쓴 지석(誌石·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판석)이 나온 것이다. 지석엔 앞뒷면과 옆면에 걸쳐 총 394개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임금이 직접 지은 글(御製和協翁主墓誌)’임을 밝히고 있다. 부왕이 옹주를 위해 지석을 남긴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지석 내용은 먼저 간 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절절하다. 영조는 화협옹주가 죽기 이틀 전인 1752년 11월 25일 병문안을 위해 직접 옹주의 집에 행차한 일을 상세히 적고 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종들에게 명해 음식을 마련해 기다리고 문후를 위해 시종들을 내게 보냈다. 오호라. 그때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었던가!’

 옹주는 중병에도 아버지를 모시려고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어쩌면 마지막이 되었을 부녀의 상봉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갑자기 의식을 잃는 바람에 영조가 “내 이제 궐에 들어가련다”라고 세 번 반복해 말했는데도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영조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며 궁으로 돌아왔다”고 썼다.

  ‘다음 날 의원이 전하는 말을 들으니 옹주가 그 뒤 정신을 차리고 시종에게 “어찌 나를 깨우지 않았느냐? 편히 환궁하시라고 아뢰었어야 했는데”라고 했다 한다. 이를 듣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 얼굴을 적셨다. 나를 보러 오려 한다고 들었으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

 생전 딸에게 모질었던 아버지의 뒤늦은 후회가 더 애달팠을까. 영조는 지석 말미에 “한 줄 써내려 갈 때마다 열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라고 덧붙였다.



김상운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