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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철학 내세워 또 다른 4대 천왕 앉힐 건가

[사설] 국정철학 내세워 또 다른 4대 천왕 앉힐 건가

Posted March. 20, 2013 03:05,   

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그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금융위원장에 취임하면 금융 공기업 수장() 인사는 국정철학에 맞는지와 전문성을 고려해 필요성이 있으면 교체를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신 후보자는 교체 검토대상으로 금융 공기업과, 공기업은 아니지만 금융위가 임명 제청하는 기업, 주인이 없어서 정부가 대주주로 들어간 금융회사를 꼽았다. 이명박(MB) 정부 때 임명된 핵심 금융 요직인 이른바 4대 천왕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강만수 산은지주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회장 어윤대 KB지주회장 등의 거취를 주시하고 있다. 신 후보자가 인선 기준으로 제시한 전문성은 이해할 수 있으나 국정철학은 개념과 기준이 모호해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은 관계와 학계 금융계 등에서 금융과 관련된 일을 한 인물들이어서 전문성이 미흡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들 세 사람이 MB의 핵심측근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자리에 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금융가에 4대 천왕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된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대통령과 가깝다보니 금융감독 당국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인선 잣대로 국정철학을 우선순위에 올린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정철학이라는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해석이 가능하다. 차라리 MB정부에서 누릴만큼 누렸으니 깨끗하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솔직하다. 국정철학 논리로 밀어내면 당사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도 쉽지 않다. 금융회사가 정권 교체 때마다 홍역을 앓는 것은 우리 금융 산업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선 금융 실세인 이헌재씨가 이끄는 이헌재 사단이 금융가를 쥐락펴락했다. MB정부에선 4대 천왕들이 금융가에서 떵떵거렸다.

임기가 보장된 금융감독원장도 하루아침에 갈아 치운 마당에 정권이 마음만 막으면 금융 공기업 수장 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임기가 법에 보장된 것도 아니어서 퇴진을 압박할 경우 이들이 버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논공행상()을 위한 낙하산 인사로 채워선 곤란하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국정철학을 따지기보다 우리 금융 산업을 발전시킬 철학과 비전을 갖춘 전문가들을 두루 발탁해야 한다며 경제논리를 제치고 정치논리를 들이대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고언했다. MB 맨들을 솎아낸 자리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운 대선 공신이 꿰차고 앉는 것은 국정철학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낙하산 인사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