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절대평가 체제 복귀가 처음 공론화된 건 지난해 6월이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사교육과의 전쟁, 어떻게 이길 것인가 토론회를 열면서 절대평가 중심으로 내신제도를 손질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올 2학기에 전국 74개 고교를 학점제 시범학교로 선정해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내신제도 손질을 위한 준비 차원이다. 학점제와 내신 절대평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시범학교 학생들은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듣고 점수가 낮으면 해당 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것(미이수)으로 처리한다. 예를 들어 100점 만점에 80점을 넘어야 과목을 이수했다고 하기로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출석을 기준으로 이수 여부를 결정했다. 또 배치고사에서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곧바로 심화 과정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길도 열어 두고 있다.
이렇게 이수/미이수를 강조하면 현재 내신 9등급제는 자동적으로 힘을 잃게 된다. 모든 과목이 선택형으로 바뀌는 2009 개정 교육 과정에 따라 학생들이 서로 다른 과목을 선택하면 석차는 더더욱 무의미해진다. 등급 대신 학생이 받은 점수만 기재하는 절대평가 과목이 늘면 내신제도도 자연스럽게 절대평가로 바뀌는 것이다.
학점제 시범학교인 한가람고 이옥식 교장은 새로운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목적이라면 반드시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상대 평가를 유지하면 학생들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모이거나 소수만 모이는 과목은 선택하지 않아 입시과목 따로, 내신과목 따로 공부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제도 변경 시점을 2014년으로 잡은 건 이때부터 2009 개정 교육 과정이 본격 적용되고 과목별 평가 기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결국 입학사정관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이뤄진 MB 교육의 마침표가 내신 절대평가 전환인 셈이다.
평소 내신 절대평가 방침에 찬성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6일 절대평가 전환은 필연적으로 내신 성적 반영비율 축소라는 결과와 수능 비중의 강화, 본고사 부활, 고교 등급제의 합법화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 건 이런 사정을 고려한 결과다. 전교조는 2009 개정 교육 과정의 정당성 여부와 국영수 중심의 수능제도 개편 논란, 입학사정관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평가방식 전환이 과연 얼마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임병욱 인창고 진학지도 교사는 교육과정과 수능 체제가 바뀌는 상황에서 더는 상대평가가 의미 없다며 바뀐 내신을 얼마나 강조하느냐 여부는 대학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안연근 잠실여고 진학지도 교사는 딜레마다. 무조건 절대평가를 강조하면 고려대 사태 같은 일이 벌어져 특목고와 일반고를 차별하는 방침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공통 기준을 만들라는 건 또 다른 줄 세우기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지 교수팀 연구 결과가 정부 공식 방침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교과부는 (지 교수팀 연구 결과는) 여러 의견 중 하나일 뿐이라며 정책연구진의 제안 내용에 대해 교육현장의 의견을 폭 넓게 수렴하고 심층적인 검토를 마친 후 공론화 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규인 최예나 kini@donga.com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