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자체 제정해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기로 모범 회사법은 기존 상법의 회사 편에 규제가 너무 많다는 재계의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재계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에는 개정 절차가 어려운 현행 상법은 맞지 않는다며 회사법 제정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가 제시한 회사법 안()에는 기존 주주의 재산권 보호와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 등 재계의 필요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일 회사법 제정을 계기로 그 내용도 재계에 유리한 쪽으로 수정하자는 것이 재계의 의도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모범 회사법의 내용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형식에 있어서는 단일 회사법 제정이 국제적인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외국엔 있고 한국엔 없는 회사법
전경련은 건국대 권종호 교수를 책임연구원으로 위촉해 2008년 4월 모범회사법 제정연구회를 조직한 뒤 2년 동안의 연구와 검토를 거쳐 최근 모범 회사법을 완성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해 김순석 전남대 교수, 심영 연세대 교수, 최병규 건국대 교수 등이 참여해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독일, 중국 등의 회사법을 연구했다.
영국은 이미 1800년대에 회사법이 제정됐으며 이 영향을 받은 호주도 20세기 초에 단일 회사법을 제정했다. 미국, 독일, 일본 등도 정부 또는 주 차원의 단일 회사법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도 1993년 중화인민공화국공사법이라는 회사법을 제정했다.
전경련은 회사법이 상법에 종속되는 법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벗어나는 데다 내용 측면에서도 국제적인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규제의 성격이 강해 산업계에서 회사법 안을 마련해 제시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현행 상법에서 규정하는 의결권 제한 법안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법안이라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다. 이처럼 전경련은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회사법제의 선진화와 이해관계 규율의 자율성 보장을 모범 회사법의 기본 원칙으로 내세웠다.
경영권 방어와 재산권 보호에 초점
모범 회사법은 경영권 방어 수단 확보와 경영 절차 간소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주인수선택권과 복수의결권 주식, 동의권부 주식 등의 도입을 법제화하자는 주장이다. 이른바 포이즌 필로 불리는 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인수 합병(M&A)이 시도될 때 기존 주주가 헐값으로 신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 경영권을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다. 동의권부 주식(황금주)은 1주 만으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말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상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주주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거치면 신주인수선택권을 정관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기로 했으나 아직 법개정은 되지 않았다.
모범 회사법은 또 사외이사 선임 비율과 감사위원회 설치 문제 등을 법으로 강제한 현행법과 달리 사외이사 선임 비율 등을 정관으로 결정하독 하고 있다.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등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규정도 정리했다.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을 때는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반드시 소집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제안이나, 현재 인수하려는 회사의 주가가 합병 시도 회사 주가의 5% 미만일 경우에만 주주총회를 면제하도록 한 법안을 20%로 늘려 합병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제안도 눈에 띈다.
전경련 관계자는 현행 상법은 사업 재편에 대해 외국보다 지나치게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 도입에는 논란 있을 듯
그러나 재계의 이런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김우찬 한국산업개발원(KDI) 교수는 사외이사 선임 비율 등을 정관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후퇴하는 법안이라며 한국적 실정에서 사외이사 제도가 없으면 결국 총수 1명이 의사결정을 하는 꼴이 되는데 이런 시스템은 이미 외환위기 때 실패한 것으로 결론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감사위원 선임에서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정은 세계적으로 찾기 힘든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감사가 대주주의 지인이나 친척인 경우도 있는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폐지보다는 절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원 임우선 swon@donga.com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