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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걷다보니 아버지 발자국 대로 (일)

김정일, 걷다보니 아버지 발자국 대로 (일)

Posted February. 10, 20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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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북한 주석은 1991년 12월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를 개설한 뒤 나진 선봉에서 버는 돈만 가지고도 우리 인민들이 잘살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이듬해 7월에는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주민들이 가진 헌 돈 가운데 일부만 새 돈으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부()를 환수했다.

그로부터 17년 뒤인 2009년 11월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헌 돈과 새 돈을 100 대 1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또 지난달에는 외자 유치를 위해 나선시를 특별시로 지정했다. 김씨 부자의 정책은 개혁 없는 제한적인 개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다.

농업과 경공업, 대외무역을 강조하는 김 위원장의 올해 경제정책도 김 주석이 오래전에 내건 정책의 재판()이다. 김 위원장은 2010년 신년 공동사설 제목을 통해 당 창건 65돌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개발은행을 세워 외국인들의 투자 유치에 나서기로 했다.

김 주석은 이미 1993년 12월 8일 혁명적 경제전략을 발표해 옛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전환과 원조 감소에 따른 경제난을 이기기 위해 경공업과 농업, 대외경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3대 제일주의를 표방한 바 있다.

대외정책도 북한의 경제위기 초기인 199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지원을 노리는 북한의 대미 정책에서 골간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김 주석은 1993년 제1차 핵 위기를 조성해 미국을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두 사람은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김 주석은 1994년 7월 사망 직전 김영삼 대통령을 평양에 불러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 했다.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신석호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