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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의 바늘구멍 미소는 차가웠다

Posted January. 20, 2010 08:36,   

18일 정오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하나미소금융재단에 남자 10명이 들어섰다. 이들은 작년까지 종로3가에서 좌판을 벌였다가 서울시의 노점정비사업으로 일터를 잃은 노점상들. 무등록 저신용 자영업자라도 자활의 기회를 준다는 정부 발표만 믿고 합법적인 노점손수레를 사고자 280만 원을 각자 빌리려고 이곳을 찾은 것.

20분을 기다렸더니 상담직원이 말을 건넸다. 신용불량자, 개인파산자 있으면 손들어주세요. 신청자격이 없습니다. 곧바로 3명이 탈락했다. 이어 5명이 서류심사 결과 빚이 많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남은 사람은 2명. 신용등급을 조회하자 이들 역시 부적격자였다. 평소 신용카드 연체기록 등이 없어 신용등급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소금융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만 지원할 수 있다. 280만 원이 없어서 왔는데 신용등급이 높다니요. 그게 뭔 말입니까. 자활의 꿈이 깨지는 데에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저소득층에게 미소금융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미소금융재단이 지난해 12월 15일 한국판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표방하며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출범한 뒤 한 달간 실제로 대출을 받은 사람은 고작 24명이다. 미소금융의 문을 두드렸던 1만3400명 가운데 0.2%에 해당한다. 나머지 99.8%가 퇴짜를 맞은 셈이다. 신용이 낮은 이들이 주로 찾는 대형 대부업체의 신용대출 승인율(3540%)과 비교하면 미소금융에서 대출받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소금융재단으로부터 대출을 받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미소금융에 잔뜩 기대를 가졌던 저소득층에서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와 각 미소금융재단은 담보 없이 빌려주는 것인 만큼 연체율을 낮추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서민층의 자활을 돕겠다는 당초 정책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늘구멍보다 좁은 대출 기회

19일 금융위원회와 미소금융중앙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전국 21개 미소금융재단과 지점을 찾은 이들은 1만34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5300명은 1차 심사에서 신용불량자 또는 개인파산자 등으로 드러나 대출신청조차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대출신청서를 작성했던 8100명 가운데 5660명 역시 신용등급과 재산보유현황 조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최종적으로 신청할 수 있었던 인원은 2440명이지만 이달 15일 현재 24명에게 모두 1억1800만 원만 대출됐을 뿐이다.



문병기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