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1월 17일 국내 한 조간신문이 김일성 사망 뉴스를 호외로 발행했다. 사실이라면 세계적 특종이 분명했다. 다른 신문들도 반신반의()하는 정보 관계자들의 말을 어정쩡하게 인용해 김일성 사망 또는 김일성 사망설을 잇따라 보도했다. 다음날 이 뉴스는 오보로 드러났다. 그는 8년을 더 산 뒤 1994년 7월 8일 사망했다. 오보의 와중에서 제목을 사망이 아닌 사망설로 붙인 한 신문 편집자는 언론인 단체의 상복()을 누렸다.
김일성 사망 오보 당시만 해도 북한은 뉴스권 밖에 존재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통로가 극히 제한돼 있어 뉴스 다루기가 무척 어려웠다. 우리 정보기관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북의 동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보안사항이다. 알고 있다는 것이 노출되면 북은 즉각 정보 차단대책을 세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관심이 뜨거운 사안에 대해서는 설명해주는 것이 좋을 듯싶을 때도 있다.
2000년대로 들어선 뒤 휴대전화 덕분에 북 관련 보도의 양상도 달라졌다. 북은 2002년 태국 기업 록슬리와 함께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2004년 4월 22일 발생한 평안북도 용천역 폭발사고를 우리 언론이 이튿날 정확히 보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휴대전화 덕북이었다. 북은 그 직후 휴대전화 서비스를 중단했다. 휴대전화로 원격 조정한 폭발사고로 분석됐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이라크 정부 및 군 고위급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심리전에 성공하자 감행됐다는 분석이 더 그럴 듯하다.
북은 작년 12월 이집트의 오라스콤과 함께 통신회사 고려링크를 세워 휴대전화 사업을 재개했다. 가입자가 곧 1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과연 내부의 정보 통제가 가능할지 관심거리다. 최근 화폐 개혁과 신종 플루 발생 사실을 외부로 빨리 알려준 것도 휴대전화였다. 당장 먹을 것도 없는 일반 주민들은 1000달러에 이르는 가입비와 전화기 값이 문제다. 남한의 버려지는 전화기라도 보내 개방사회로 끌어내는데 도움이 됐으면 싶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