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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면 한국생각 잠들면 소록도 꿈

Posted December. 29, 200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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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 두 수녀를 찾아 인스브루크로 향했다. 마리안 수녀가 사는 곳은 인스브루크 시내에서 기차로 20분 거리인 마트라이라는 작은 마을. 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물어물어 집을 찾았다. 마리안 수녀는 다행히 집에 있었다.

한국에서 전달받은 소록도 주민들의 편지를 전했다.

큰 할매, 작은 할매, 감사드립니다.

그토록 곱던 젊음을, 소록도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 평생을 보내신 할머니 두 분께 충심으로 감사합니다.

마리안 수녀는 편지를 읽으면서 아직도 소록도 꿈을 꾼다고 말했다. 두 수녀는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쪽빛 물결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0대 후반부터 40년을 넘게 산 소록도는 고향과 마찬가지였기 때문.

이젠 오히려 오스트리아가 낯선 땅이다. 마리안 수녀는 동생들 도움을 받아 이곳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등록 신고도 새로 하고, 친지와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얼굴을 익히고 있단다. 아직도 저녁 식사는 한식으로 한다.

3평 남짓한 방안은 한국에서 가져온 자그마한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방문에는 붓글씨로 쓴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문구도 붙어 있었다.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말이라고 마리안 수녀는 설명했다.

그의 삶은 이 좌우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소록도를 찾은 것은 1962년. 처음부터 평생 소록도에서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됐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수녀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했다. 약이 부족하면 오스트리아의 지인들에게 호소해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로부터 실어 날랐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영양제며 분유도 부지런히 구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소록도에선 계속 아이들이 태어났다. 한센병 환자인 부모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두 수녀는 보육원을 세웠다. 가난한 살림살이라 옷은 직접 해서 입혔다. 아이들이 여섯 살이 돼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육지의 보육원으로 보냈다.

아이들을 무사히 육지로 보낼 때가 가장 기뻤어요. 환자를 완치시켜서 육지로 보낼 때도 기뻤죠. 되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지만 서운한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본인들만 잘 살면 그만이니까.



금동근 정승호 gold@donga.com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