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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의 슬픈 사랑은 밤하늘 별빛되어 흘러가고

아이다의 슬픈 사랑은 밤하늘 별빛되어 흘러가고

Posted August. 10, 2005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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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베로나.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던 골목과 광장들은 저녁 여덟시 반이 넘으면서 썰물 빠지듯 고요해졌다. 아홉 시, 비로소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 1만5000여명에 이르는 청중이 손에 촛불을 든 채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유적에 모여 앉았다.

이탈리아 전통극의 광대 복장을 한 안내요원이 징을 두드리며 공연 임박을 알리자 청중은 일제히 손뼉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 전역의 음악팬과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 베로나 아레나(원형경기장) 오페라 축제가 이 날의 막을 올리려 하는 순간이었다.

1만5000여명의 관객 손에 촛불 들고 입장

세계 야외오페라의 원조격인 아레나 오페라축제는 1913년 당대의 명 테너 조반니 체나텔로가 베로나 시당국에 로마시대의 유적인 경기장을 오페라극장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현실화 됐다. 처음 공연된 베르디 아이다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명성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세계 1, 2차 대전 때 잠시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50회의 공연을 통해 연인원 80만 여명의 청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83회를 맞는 올해 축제의 프로그램은 이 축제의 원조격인 아이다를 비롯, 베르디 나부코와 푸치니 보엠(라보엠) 투란도트, 폰키엘리 조콘다등 다섯 작품으로 짜여졌다. 기자가 첫날(6일) 관람한 공연작은 파리의 2류 시인과 병약한 처녀의 절망적 사랑을 그린 보엠. 센티멘털한 서정극에 가까운 작품이어서 규모로 승부하는 야외 오페라에 맞을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파리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묘사한 2막이 오르자 의심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의상의 파리장과 파리지엔으로 분장한 100여 명의 합창이 무대를 가득 채웠고, 풍선장수와 불 뿜는 광대, 목말 탄 광대가 무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시선을 붙들었다. 화강암 질감의 백색 무대는 조명의 마술에 따라 수시로 색상을 바꾸었다.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스의 노래도 좋았지만, 강건하면서도 경쾌한 질감의 음성을 선보인 마르첼로역의 바리톤 마리우스 퀴샹은 단연 돋보였다.

다음날인 7일은 명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가 제작한 아이다 무대. 황금색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객석을 압도하는 가운데 180여 명의 합창단이 이국의 병사와 노예, 무희로 등장하는 2막 개선장면의 화려함은 극치를 달렸다. 주연급 성악가들이 눈에 띄는 열연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왕과 사제 역 등 조연급의 열창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마이크 음향장치 없이 공연 소음 전혀 없어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최대 2만5000명을 수용하는 이 거대한 야외극장에서 장내 안내방송을 제외하고는 일절 마이크와 음향 증폭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악가들의 노래는 난반사되거나 불분명한 느낌이 전혀 없이 또렷하게 전달됐다. 관현악과 합창단을 포함해 300여 명이 이루는 자연의 순수한 화음에 이 순간만큼은 베로나 전체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일까.

올해 6월 17일 막을 올린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8월 31일까지 계속된다. www.arena.it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