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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본판 CIA'

Posted March. 29, 2004 23:21,   

경제대국 일본의 성공 비결을 얘기할 때 세지마 류조()를 빼놓을 수 없다. 1967년 중동전쟁이 6일 만에 끝나리라는 것을 정확하게 예견했고 1973년 오일쇼크가 터질 조짐을 미리 읽어 회사에 막대한 석유시세 차익을 안겨 줬다는 일본 종합상사의 산증인, 바로 그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관동군 참모를 지내면서 갈고 닦은 정보 감각은 그에게 최대 자산이었다. 패전 후 11년을 소련군 포로로 허송세월했음에도 훗날 이토추()상사의 회장 자리에 올랐고 전무후무한 정보담당 임원(CIO)이라는 칭송까지 얻었으니까.

일본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우리의 국가정보원(NIS)과 같은 국가정보기구가 없는 나라다. 대신 내각에 정보조사실(내조실)이라는 왜소한 기구를 운영한다. 일본처럼 큰 나라를 운영하려면 방대한 정보 수집 활동은 필수일 터인데 그 공백은 어떻게 메우느냐고? 답은 세지마 와 같은 민간 기업인을 비롯해 외교관 언론인 등 다양한 부문에서 자발적으로 메워 준다다. 일례로 미쓰이()상사는 세계 185개 지역의 현지 사무소에서 수집하는 정보를 1957년부터 운영했다는 본사 중앙컴퓨터시스템에 축적한다. 이 중 상당한 정보가 내조실로 전달됨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민간과 정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특이한 국가정보시스템이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속에서 외국에서 수집하는 정보의 8590%를 경제정보로 채우는 것, 이것이 전후() 일본의 성공 전략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보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 것일까? 내조실을 CIA와 유사한 정보기관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911 이후 테러 위협이 발등의 불이 됐으니 일본의 국가정보시스템도 사정에 따라 변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인 우리는 아무래도 좀 찜찜하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보수우경화니 재무장이니 말이 많은 터에 세지마의 후예들이 우리 땅을 제 집 안방처럼 들락거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일본 모 TV의 서울 주재 언론인이 군사정보를 수집하다 강제 퇴거당한 일도 있었지 않은가.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