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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외국인 혐오 '합병증'

Posted November. 04, 200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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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력 정치인들이 과거 역사를 왜곡하거나 인접국 국민을 싸잡아 범죄자로 비하하는 발언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한국 중국 등 인접국들은 거세게 반발하지만 망언, 폭언, 실언은 오히려 대상을 넓혀가며 점차 강도를 더해가는 양상이다. 최근 들어서는 종래의 단골 메뉴였던 역사 왜곡에 그치지 않고 일반 사회현상과 관련해서도 상식 이하의 막말이 줄을 잇고 있다.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장기불황의 반작용으로 내셔널리즘이 확산된 데다 범죄증가 등 국내문제를 외국인 탓으로 돌리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일본인 납치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한반도에 대한 속죄 의식이 엷어진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불황에 따른 우울증과 외국인 혐오증이 혐북() 감정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일부 정치인들이 영향력 유지를 위해 이런 흐름에 편승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역사망언하면 승승장구하는 아이러니=과거 일본이 나쁜 짓을 한 것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반성한다. 하지만 일본이 아무리 사과해도 한국인들은 용서해줄 것 같지 않다. 그럴 때마다 절망감을 느낀다.

집권 자민당의 참의원 초선 여성의원인 아리무라 하루코(34) 의원은 올해 초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한일 양국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며 이같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역사망언의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은 주로 60, 70대의 고령 정치인들.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간사장 등 차세대 주자들은 우익 성향을 갖고 있긴 해도 한국 중국과 마찰을 야기할 발언은 하지 않는다.

망언으로 물의를 빚으면 예전엔 당사자가 현직에서 물러나는 방식으로 겉으로나마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요즘은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더 많다.

아소 다로() 의원은 당직을 그만두자 총무처 장관으로 영전했고, 에토 다카미() 의원은 고령을 이유로 은퇴했지만 장남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데 성공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인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이어 2위이고, 현직 장관인 장남에 이어 3남까지 부친의 인기에 기대어 자민당 후보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예전엔 무의식적으로 실언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요즘은 정치적 선전효과를 노릴 뿐 아니라 잘못된 사실에 기초했을망정 나름대로 논리적 완결성을 갖췄다는 점도 주목된다. 에토 의원은 현장에 기자가 있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발언했고, 이시하라 지사는 20세기 초 한일병합 당시의 여러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했다.

이시하라 모델의 위력= 일본 극우파 리더인 이시하라 지사는 막말 행진을 벌이는 일본 정치인의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그의 인기비결에 대해 발언의 내용 못지않게 말하는 방식 덕택이라고 전한다. 아사히신문 정치부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는 대다수 일본 정치인들은 말을 빙빙 돌려서 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반면 이시하라 지사는 맞다 틀리다를 분명한 어조로 밝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중국인 등 외국인 유학생을 좀도둑에 빗댄 마쓰자와 시게후미() 가나가와현 지사는 일본 정계의 엘리트 양성코스인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의 개혁파 정치인이어서 더욱 충격을 준다.



박원재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