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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혈과 차병원

Posted December. 28, 2016 08:24,   

Updated December. 28, 201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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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종 28년(서기 1533년) 2월 11일 약방제조 장순손 등이 “상(上)의 건강이 이제 매우 좋아지셨으니 신들의 기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라고 인사를 올렸다. 임금이 먹은 약은 뭔지 모르게 해야 더 효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야 말하겠다고 그들은 머리를 조아렸다. 자하거(紫河車), 바로 태반이었다. 태반은 동의보감에 혈기 보충, 심신 안정, 피부 질환에 좋다고 나와 있다. 대통령이 주사를 맞았대서 요즘 뜨고 있는 그 태반이다.

 ▷태아는 탯줄로 어머니의 태반과 연결돼 영양을 공급받는다. 탯줄에 들어 있는 피를 제대혈(탯줄피)이라고 한다. 단순한 혈액과는 달리 소아암부터 치매까지 난치병 치료에 희망을 줄 줄기세포가 풍부하다. 출산 때 제대혈을 냉동 보관하면 나중에 본인이나 가족의 치료용으로 쓸 수 있다. 이를 수익사업으로 만든 것이 제대혈 은행이다. 소중한 제대혈을 함부로 사고팔지 못하도록 2009년 ‘제대혈 관리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였다.

 ▷2011년 이 법 시행 이후 제대혈을 사고팔거나 제대혈 줄기세포를 허가받지 않은 병원에서 노화방지, 미용 목적으로 쓰는 건 불법이다. 최근 분당차병원은 연구용으로 기증받은 제대혈을 차광렬 회장과 그의 부친 차경섭 명예이사장 등 가족에게 9차례 불법 시술했다가 적발됐다. 차움은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지 않았는데도 노화방지·건강관리 전문의료기관이라고 광고하다 3개월 업무정지까지 받았다. 이곳 단골이었던 최순실과 박 대통령도 제대혈 시술을 했다면 불법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차 회장 부자(父子)는 1960년 차산부인과를 시작으로 강남차병원 분당차병원 차의과학대 등을 잇달아 세웠다. 차 회장은 외환위기 때 320억 원을 장학금 등으로 내놓을 만큼 기부에도 적극적이었다. 부친은 1995년 ‘훌륭한 아버지상’을 받고 자부(慈父)라는 말을 들었다. 내년에 백수(白壽·99세)인 그도 4차례 제대혈을 맞은 효험으로 장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명성을 쌓긴 어려워도 허물어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이 진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