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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총리, 실세 총리

Posted July. 18, 2016 06:56,   

Updated July. 18, 201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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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김대중(DJ) 총재가 네 번째로 대통령직에 도전하면서 당을 대신 이끌어줄 사람을 찾았다. 미국 특파원을 지내 미국통으로 꼽히고 언론계 인맥도 탄탄해 DJ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3선의 조세형 씨를 총재권한대행으로 앉혔다. 마침내 1997년 대선후보 DJ가 해외 순방을 떠날 때 배웅을 마친 조 대행이 말했다. “이제 권한은 떠났고 대행만 남았구나.” ‘무늬만 2인자’의 처지를 뼈 있는 농담으로 표현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이해찬 국무총리는 ‘실세 총리’로 통했다. 두 사람의 생각이 쌍둥이 같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총리와 나는 문제를 내놓고 답을 쓰라고 하면 거의 비슷한 답을 써낸다. 천생연분”이라고 했다. 이 총리는 “대통령은 구단주고 총리는 감독”이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내치(內治)를 맡기다시피 하고 자신은 ‘동북아 균형자론’과 ‘내각제적 권력분점(대연정)’ 같은 구상을 불쑥불쑥 던져 나라 안팎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황교안 총리가 성주군 주민을 설득하러 갔다가 계란과 물병 봉변을 당했다. 평소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황 총리의 황망한 모습을 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최악의 총리 봉변은 1991년 6월 정원식 총리서리가 계란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 것도 모자라 손찌검까지 당했던 ‘외국어대 총리 폭행 사건’일 것이다. 정 총리가 당시 시위정국을 단숨에 공안정국으로 바꾼 것처럼 황 총리가 ‘사드 반대론’을 잠재울지는 알 수 없다.

 ▷흔히 총리를 ‘임명직 중 최고위직’으로 부른다. 헌법은 총리를 대통령 유고나 궐위 때 권한대행을 맡을 1순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해찬 총리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2인자 총리는 손에 꼽을 정도다. 황 총리 사건 이후 ‘의전 총리’ ‘대독 총리’에 이어 ‘매품 총리’라는 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총리의 역할이 희화화하는 이유는 1인자가 권한을 위임하지 않으면서 방패막이 역할만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김순덕 yuri@donga.com